마음을 풍요롭게/탐방 22

【경남연안 이순신해전 흔적을 찾아】

【경남연안 이순신해전 흔적을 찾아】 거제 옥포 첫 해전 산처럼 묵직하고 침착하라 남해 관음포 마지막 해전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이 한국 영화 역사상 최단기간 최다관객을 동원하면서 지난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다. 덩달아 마침 휴가철을 맞은 남해안 이순신 장군의 전적지와 유적지에도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의 마지막 부분에 한산대첩을 후속 작으로 예고하는 듯한 영상이 나오고, 김한민 감독이 지난 8월 13~17일에 열린 제53회 한산대첩축제 기간 중 통영을 찾아 한산대첩을 영화로 만들 것이라고 밝히면서 경남지역의 이순신 전적지와 유적지도 새삼 관심을 불러 모은다. 경남 연안에는 임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한산도해전 유적지를 비롯해 잘 알려진 전적지 외에도 장군이 출전하면서 ..

【거창 동호마을과 웅양면】

【거창 동호마을과 웅양면】 경남 최북단에 위치한 곰을 닮은 양지바른 땅 이맘때쯤 거창읍에서 3번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20분 정도 달리다 보면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향기로운 포도내음이 코를 자극하는 고을을 만난다. 경남의 최북단이자 거창군의 북쪽 끝자락인 고제면의 동쪽에 나란히 붙은 웅양면이다. 이곳은 남해군 미조면에서 평안북도 초산군 초산면까지 연결된 3번국도가 경북 김천시와 이어지는 곳이라 생활권으로는 사실상 경남의 가장 북쪽으로 느껴진다. 산의 형세가 곰을 닮고, 양지바른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웅양면은 동호리를 비롯해 죽림노현산포군암신촌한기리 등 7개의 법정리로 나눠져 있다. 사과향과 포도향, 솔향에 백두대간 자락의 아름다운 산세와 옛이야기까지 담고 있는 경남의 서북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웅..

밀양아리랑길

[밀양아리랑길] 역사·문화·자연생태가 어우러진 길 밀양 옛이야기 간직하고 현대인과 만난다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산들로 둘러싸인 밀양은 강과 기름지고 넓은 들이 많아 밀양의 최초 이름으로 추정되는 미리미동국 때부터 살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이어온 밀양. 영남대로 밀양 옛길 걷기에 이어 밀양아리랑길이 활짝 열렸다. 세 갈래로 이루어진 밀양아리랑길은 2012년 조성됐다. 옛길을 걸으며 귀를 기울여보면 태곳적 밀양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강과 숲, 산이 어우러진 길 위에서 밀양 이야기와 문화유적지를 만나볼 수 있는 여정이다. 오늘은 3코스를 걸어본다. 큰 비 올 때 둘러가던 애환과 추억의 아리랑길 금시당 수변 시작 길에 있는 용두보에서 바위와 어우러진 수려한 강 풍광과 맞닥뜨렸다. 1906..

산청 구형왕릉 가는 길

【가을에 걷기 좋은 길】 산청 구형왕릉 가는 길 가야 마지막 왕 잠든 곳에서 세월의 무상을 느끼다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왕산 중턱에 있는 사적 제214호 구형왕릉(仇衡王陵) 가는 길은 화계마을 입구를 지나 능 주차장까지 차로 이동하게 되면 걷는 길은 채 1㎞도 안 되는 짧은 길이다. 산청 4경으로 꼽히는 이유가 걷는 길의 운치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 왕릉에 대한 궁금증이 커진다. 왕릉으로 오르는 길은 잘 포장돼 있다. 그리 가파르지 않은데다 양쪽으로 식재된 소나무가 짙은 그늘을 만들어 쨍한 가을 햇빛에 들뜬 마음을 가라앉게 한다. 얼마 가지 않아 길 왼쪽에 류의태 약수터 가는 길 이라는 나무 팻말이 보인다. 명의의 이름이 붙은 약수터에 가야국 마지막 왕의 무덤까지 왕산은 세월을 거스른 과거에 푹 파묻혀 ..

합천 가야산 소리길

【가을에 걷기 좋은 길】 합천 가야산 소리길 흐르는 물조차 붉은 홍류동 따라 바람소리물소리풍경소리와 함께 호젓이 더딘 걸음으로 숲 언덕을 찾아드니 돌무더기 어지러운 구비마다 물결이 부딪히네 꽃은 지고 새는 우는데 인적은 드물고 구름까지 깊어 예 놀던 곳 알 수 없어라 무릉도원을 상상하며 가야산을 바라보는 곳이라는 갱멱원(更覓源)을 표현한 글귀다. 조선팔경의 한 곳으로 꼽혀온 가야산에 예부터 19명소가 있었는데, 이를 가야 19명소라 한다. 그 가운데 가을 단풍이 너무 붉어서 흐르는 물조차 붉게 보인다 하여 이름 붙은 홍류동 계곡에는 지금은 불타 없어진 완재암을 비롯해 16명소가 있다. 갱멱원은 그 중 홍류동 초입에 있어 사람의 세계와 가깝다. 홍류동에 있는 가야16명소 중 농산정(籠山亭)은 최치원 선생이..

함양 선비문화탐방로

【가을에 걷기 좋은 길】 함양 선비문화탐방로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는 선비의 길에서 세상일을 잊는다 백두대간이 뻗어 내리다 덕유산에서 지리산으로 건너뛰면서 빚어낸 곳에 자리해 산과 계곡이 아름다운 함양. 좌안동 우함양이라 할 만큼 함양은 조선시대 영남 유림의 본산으로 이름을 떨쳤다. 자연과 인문이 조화를 이룬 선비의 고장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낙동강 서쪽 경상우도의 선비들이 노닐었던 곳으로 이름난 함양의 화림동 계곡은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강의 상류 금천이 서상면과 서하면을 흘러내리면서 계곡에 기이한 바위와 소를 만들고, 농월정에 이르러 너럭바위 위에 옥류(玉流)를 빚어낸다. 화림동 계곡은 옛날 과거 보러 길을 나섰던 영남 유생들이 덕유산 육십령을 넘기 전에 지나던 길목으로 계곡을 따라 소(沼)와 정자가..

[경남근대건축문화유산 투어-8] 진해 군항문화탐방

[경남근대건축문화유산 투어-8] ‘살아있는 근대건축물 박물관’ 해군기지 내 100년 안팎 건축물 산재 군항도시 진해의 구도심과 군항지역은 살아있는 근대건축물 박물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곳곳에 산재한 지은 지 100년 안팎의 근대건축물들이 지금도 각각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진해의 근대건축물은 도시화에 따른 개발과 훼손의 위기에서도 비교적 온전하게 본래의 모습을 보전하고 있다.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 대부분이 해군부대와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해군기지를 해방 후 한국 해군이 이어받았다. 군부대 시설은 진해 지역 근대건축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은 러일전쟁(1904~1905) 승리 후 한반도를 본격적인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진해에 군항을 건설..

[경남근대건축문화유산 투어-7] 진주 중앙시장 체험길

[경남근대건축문화유산 투어-7] '남진주' 명성 보여주는 건축물 잔존 진주 역사만큼 근대 발자취도 남아 질곡 속에서도 민초 삶의 현장은 번성 진주가 삼남의 중심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전국 12목 중 하나인 진주목이라 불렸다. 각 도의 관찰사가 거처하는 감영을 두고 행정과 산업, 문화의 중심지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조선팔도의 온갖 물자와 사람이 수시로 모여들 정도로 큰 고을이라 하여 웅부거읍(雄府巨邑)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후 1896년 전국을 13도로 나누면서 탄생한 경상남도 청사가 진주에 들어서면서 전성기를 이어갔다. '북평양 남진주'의 영광은 일제 식민 치하의 질곡 속에서 점차 흐릿해져갔다. 하지만 민초들의 삶과 함께해온 시장은 예외였다. 진주는 전국에서 토지가 가장..

[경남근대건축문화유산 투어-6] 마산 원마산탐방로

[경남근대건축문화유산 투어-6] 조창 설치와 함께 마산 시발점 번영과 쇠락 거듭한 마산 역사 담긴 곳 경남 대표 어시장이면서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마산어시장. 마산어시장과 주변 일대는 오늘날 마산의 시발점이자 아직도 마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이곳은 마산의 중심 상권이 일제 강점기엔 일본인 거주지인 신마산으로, 산업화 땐 마산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이 있던 산호동과 양덕동 일대로 옮겨가면서 상대적으로 쇠락했다. 그리고 마창진 통합에 따라 더욱 위축돼 보이는 이 일대는 번영과 쇠락을 거듭한 마산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마산은 조선시대 대동법 시행 이후 대동미의 수납과 운반을 위한 조창, 즉 마산창(馬山倉)이 설치되면서 마산포(현 창원시 마산합포구)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한산했던 포구에 조..

[경남근대건축문화유산 투어-5] 창원 역사마을길

[경남근대건축문화유산 투어-5] 이원수가 노래한 ‘나의 살던 고향’ 창원시 의창구 소답동 창원읍성 일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아동문학가 이원수(1911~1981)가 열다섯 나이에 등단한 시이자 국민동요 고향의 봄의 노랫말이다. 시의 배경이 된 꽃피는 산골은 옛 창원읍성이 있던 창원시 의창구 북동과 중동, 소답동 일대다. 양산에서 태어난 이원수는 첫돌을 맞기도 전에 부모를 따라 창원읍으로 이사 왔다. 그는 9살까지 이 동네에 살며 소답동 새터의 서당을 다녔다. 서당으로 가기 위해 읍성 동문 밖을 나서면 이원수가 노래했던 울긋불긋 꽃 대궐이 나타난다. 한국 근대조각의 선구자로 불리는 김종영(1915~1982)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