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풍요롭게/탐방

【거창 동호마을과 웅양면】

고룡이 2021. 11. 13. 23:08

【거창 동호마을과 웅양면】

경남 최북단에 위치한

곰을 닮은 양지바른 땅

 

이맘때쯤 거창읍에서 3번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20분 정도 달리다 보면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향기로운 포도내음이 코를 자극하는 고을을 만난다. 경남의 최북단이자 거창군의 북쪽 끝자락인 고제면의 동쪽에 나란히 붙은 웅양면이다. 이곳은 남해군 미조면에서 평안북도 초산군 초산면까지 연결된 3번국도가 경북 김천시와 이어지는 곳이라 생활권으로는 사실상 경남의 가장 북쪽으로 느껴진다. 산의 형세가 곰을 닮고, 양지바른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웅양면은 동호리를 비롯해 죽림노현산포군암신촌한기리 등 7개의 법정리로 나눠져 있다. 사과향과 포도향, 솔향에 백두대간 자락의 아름다운 산세와 옛이야기까지 담고 있는 경남의 서북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웅양면. 점점 깊어가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소나무숲이 길손을 부르는 동호마을과 웅양면을 찾아간다.

 

3번국도 따라 김천 가는 길에 위치

거창읍에서 김천을 안내하는 3번국도를 따라 가다 웅양면 초입에 자리 잡은 동호리에서 발길을 멈춘다. 동호숲과 이씨고가, 웅양포도축제로 제법 알려진 마을이다. 16세기 초 연안 이씨들이 들어와 집성촌을 이룬 동호마을은 거창에서 김천으로 향하는 길의 동쪽 변에 있다 해서 동변으로 불리다가 19세기부터 동호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동호마을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을형태가 곡식의 껍질을 골라내는 챙이(키의 방언)처럼 생겼다. 마을 동북쪽에 자리 잡은 불영산(佛靈山) 자락 골짜기는 챙이질 할 때 알곡만 남는 안쪽 부분이다. 그래서 그 부근에 사는 마을사람들은 부의 기운을 받는다고 전해온다.

마을 서북쪽과 동쪽은 챙이의 손잡이에 해당한다. 문제는 챙이 끝에 해당하는 마을의 서쪽 끝이다. 챙이 끝은 챙이질 할 때 껍질과 함께 알곡이 날아가기도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마을사람들은 재물이 날아간다고 여겼다. 이 액운을 막기 위해 마을 입구에 소나무를 넓게 심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소나무들은 숲을 이루었고, 마을사람들은 이 숲이 마을 안의 좋은 기운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아주고, 바깥의 나쁜 기운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차단해 준다고 믿었다. 실제로 숲은 오랜 세월 방풍림 역할을 했다.

그리고 주변에 참나무와 느티나무가 하나둘 들어서면서 아름다운 숲을 만들었다. 봄이면 숲속 곳곳에 새싹이 자라고,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로 마을사람과 길손들의 휴식처가 된다. 가을이면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요즘은 포도 주산지답게 해마다 9월이면 웅양포도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솔향기 가득한 동호숲이 방문객 환영

이렇듯 동호마을은 솔향기 가득한 숲이 방문객을 먼저 맞이한다.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이름 모를 들풀과 들꽃을 보면서 걷다 보면 숲의 끝자락이자 마을 초입에 이른다. 수령이 수백 년은 됨직한 느티나무가 몇 그루 자리한 그곳에는 새끼줄이 둘러쳐진 예사롭지 않은 모습을 한 돌무더기가 이방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역사가 깊은 마을은 대부분 입구에 성황단이 자리한다. 동제(洞祭) 등을 지내면서 마을과 주민들의 무사안녕과 하는 일이 잘되기를 빌었던 우리 조상들의 흔적이다. 동호숲 끝자락의 돌무더기가 바로 성황단이다.

6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동호마을은 마을입구 동호숲의 성황단 외에 성황단이 두 곳 더 있었다. 마을 남쪽 들녘의 성대 가까이와 불영산 아래에 각각 자리한 성황단이다. 동호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이면 이들 성황단 세 곳에서 동제와 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성황단에 돌 세 개를 얹고, 세 번 절하고, 소원을 빈 후 침을 세 번 뱉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옛말이 전해온다. 그래서인지 동호숲 돌무더기에서 가끔 이런 행동을 따라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복잡하고 힘든 일상을 잠시나마 잊고 싶은 마음이리라.

 

고가와 이끼 낀 돌담 옛 정취 그대로

성황단에서 소원을 빌고 느티나무 그늘을 지나면 동호마을에 들어선다. 불영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가운데 두고 이어지는 골목길은 자연석으로 쌓은 돌담이다. 흙을 사용하지 않고 돌로만 담을 쌓는 메쌓기 방식의 담이라고 한다.

돌담의 사이사이에 낀 오래된 이끼와 담쟁이덩굴이 어우러져 옛 담의 정취를 보여준다. 담장 위에는 호박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10월 말쯤이면 담장 밖으로 드리운 감나무 가지에서 빨간 홍시를 볼 수 있겠다.

이곳의 담은 대문채쯤에는 높아서 안을 들여다보기에 쉽지 않지만, 골목으로 이어지는 담은 이웃집에서 부르면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낮다. 담장이 높은 여느 전통마을과 사뭇 달라 보이지만, 거기에도 이유가 있다. 오랫동안 연안 이씨 집성촌이어서 큰집과 작은집 등 친척집들로 이루어진 마을이기 때문이다.

동호마을 곳곳에는 돌담과 잘 어울리는 오래된 한옥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 가운데 경상남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동호리 이씨고가와 영은고택 역시 담장을 공유하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 등으로 이루진 이들 고택과 어울려 있는 한옥들이 백두대간과 연접한 서북부경남 산간내륙의 민가 살림채 형식을 잘 보존 하고 있다. 말끔히 단장돼 있는 마을의 재실 또한 연안 이씨 문중의 행보를 잘 보여준다.

 

한글 새겨진 조선시대 최초 비석도

동호마을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면 옛이야기를 전해주는 또 다른 볼거리를 만난다. 사액서원인 포충사와 조선시대에 세운 비석으로는 드물게 한글이 새겨진 불망비다. 3번국도 서쪽에 접한 웅양면사무소 바로 뒤에 자리 잡고 있다.

포충사는 조선 중기 영조 때 일어난 무신란을 진압하다 숨진 이 고을 좌수 이원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기도 하다. 당시 거창에서도 정희량이 주도하며 무신란에 합류했다. 고을 좌수 이술원은 난의 무리와 싸우다가 목숨을 잃게 된다. 무신란이 평정된 후 이원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문을 세우고 충강공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리고 포충사라는 사액을 내려 그의 위패를 모시면서 사액서원 겸 사당으로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다.

포충사의 문루인 자전루 입구 담 아래에 서 있는 비석은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쇠로 만들어진 비석의 뒷면에 한글로 긔뫼동지달일립이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부사 김계진의 영세불망비로 이 비석이 세워진 시기를 나타낸다. 고종 16년인 기묘년 동짓달 초하루에 세웠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때 세운 비석 가운데 한글이 새겨진 것은 이 불망비가 최초라고 한다.

불망비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또 다른 비석의 사연이 애잔하다. 무신란 때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주인을 돕다 죽은 노비 상발의 충성심을 기리는 비석이다. 그래서 충노상발비라 부른다.

 

삼국시대 쌓은 산성 성벽 흔적 남아

웅양면사무소에서 3번국도를 따라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김천의 가장 남쪽인 김천시 대덕면 문의리와 경계를 이룬 거창군 웅양면 한기리다. 이곳에 학모양으로 생긴 터에 자리 잡았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백학동마을이 있고, 그 뒷산에 경상남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산성 흔적이 남아 있다.

하성이라 불리는 이 산성은 축조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 때 백제가 신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처음 쌓았다고 전해진다. 훗날 임진왜란 때 도성으로 북진하는 왜군을 방어하기 위해 다시 수축했다.

정유재란 때 이일 장군이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군사와 이곳에서 싸웠으나 끝내는 함락되고 말았다. 성벽 주변 곳곳에 보이는 돌무더기에도 재미있는 옛이야기가 숨어 있다. 성을 축조할 때 남매가 열심히 돌을 날랐는데, 성을 다 쌓고 남은 돌들이 여기저기 쌓인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누이동생이 돌을 치마에 담아 운반했다고 하여 이 성을 여성(女城) 또는 치마성이라고도 한다.

성의 형태는 산기슭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정상부까지 계곡을 감싸고 쌓는 포곡식이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인 동래의 금정산성을 비롯해 남한산성북한산성 등 비교적 큰 규모의 산성에 적용된 방식이다. 성 안에는 경작지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높이 2m에 길이 1.5㎞ 정도의 성벽이 남아 있다고 하나 대부분 허물어지고 수풀에 뒤덮혀 지금은 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다.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산성이니 복원해 성곽 둘레길로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사진작가 많이 찾아

<성스러운곳 성대>

마을 서남쪽 들녘 언덕배기에 잘 생긴 소나무 서 너 그루가 서있다. 주변은 평평하게 잘 다듬어져 있다. 이곳을 성대라고 하는데 성스러운 곳이라는 뜻이다. 그 성대 옆으로 난 작은 길이 마을까지 연결된다. 웅양면 남쪽의 주상면에서 동호마을로 오는 옛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곳은 마을의 또 다른 입구이자 챙이의 다른 쪽 끝에 해당한다. 그런 연유로 성황단과 함께 주변에 소나무 성대가 자리해 마을을 지켜주고 있는 것인가 보다. 아름드리의 아름다운 소나무가 멀리서 보면 마치 그림속의 한 장면 같다. 그 모습을 담기 위해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솔향기와 함께 하는 농촌전통체험

동호마을에는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솔향기돌담마을이 있어 연중 체험객들을 맞는다. 옛날 마을 문중이 자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서당 옆에 위치한 체험장이라 그 의미를 더한다. 사과와 포도로 유명한 곳이라 가을이면 사과향과 포도향을 즐기며 사과따기포도따기 체험을 하려는 이들이 즐겨 찾는다. 이외에도 다슬기잡기 등 자연체험과 한지천연염색 등을 활용한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감자캐기, 뗏목타기 등을 통해 자연과 어우러지며 지역 농산물도 맛볼 수 있다. 미리 신청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체험 신청 및 문의 (055)942-0282

 

거창북부 지역 볼거리들

 

1개읍 11개 면으로 이루어진 거창군은 덕유산 자락에서부터 북상면과 고제면, 웅양면, 가북면으로 이어지면서 경북 남단과 경계를 이룬다. 그리고 이들 면과 남쪽에 접한 위천면주상면을 포함한 6개면이 거창군 북부에 해당한다. 백두대간의 덕유산 자락이 뻗어 내리며 빚은 땅이다. 그런 만큼 곳곳에 절경과 이야기를 품고 있다. 웅양면을 제외한 거창 북부 5개 면의 볼거리를 소개한다.

 

북상면 월성계곡(월성리)을 비롯해 빙기실계곡(병곡리), 마학동계곡(산수리), 행기숲(농산리), 갈계숲(갈계리) 등 계곡과 숲이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농산리의 용암정과 모리재만월당, 갈계리의 서간소루, 은진임씨 정려각 등 정자와 옛 건축물은 각각 지역과 시대적 특징을 보여준다. 덕유산국립공원 내에 있는 사찰 송계사(소정리)는 고즈넉한 가을분위기에 어울린다.

 

고제면 소금강이라 부를 만큼 경치가 아름다운 삼봉산(봉계리)과 그 기슭에 빼어난 바위에 둘러싸인 금봉암(봉산리),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거창 농산리 입석음각선인상이 대표적이다.

 

가북면 거창의 숨은 진산인 보해산과 그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에 용산숲(용산리)이 있다.

 

주상면 한말의 우국지사 이주환과 그의 스승 송병선송병순의 제사를 모시는 사당인 성암사(연교리)가 있다.

 

위천면 남쪽으로 함양군과 경계를 이룬 기백산과 금원산, 북쪽으로 북상면과 고제면에 둘러싸인 위천면은 유명한 금원산자연휴양림(상천리), 수승대(황산리), 황산고가마을(황산리) 등이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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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旌門) 충신효자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그 사는 집 앞이나 마을 입구에 세우던 붉은 문.

 

 표선자 명예기자(거창군 문화관광해설사) 진 최춘환 편집장

경남공감 2014년 10월호[Vol.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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