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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순례】사천 각산산성

고룡이 2020. 8. 2. 00:46

【산성순례】 사천 각산산성

한려해상 지켜보는 파수꾼

삼천포 앞바다와 시가지 가까이 자리

사천시에 접어들어 아름다운 포구 삼천포항을 찾으면 바다에서 머지않은 발치에 치마폭을 두른 듯 선 각산을 만난다. 해발 400m 남짓의 각산은 여느 산과 달리 삼천포 앞바다와 시가지에 바로 근접해 있다. 삼천포에 사는 사람이나 찾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벼운 차림으로도 쉬이 오를 수 있도록 허락하는 산이다. 하지만 제법 가파른 경사로 땀을 흘리게 한다.

오르는 길은 문화예술회관이나 모충사 방향을 비롯해 여러 갈래. 그중 삼천포와 창선을 잇는 대교에 가까운 대방동 쪽에서 올라가는 코스를 이용하면 산 정상 조금 못 미쳐 각산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산성은 그렇게 규모가 크지도,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그 유래만은 꽤 깊다. 오랫동안 허물어져 방치되어 있었으나 242m의 산성이 복구돼 단아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각산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산성을 향해 오르기 전 초입에 있는 대방사에서 고즈넉이 울려오는 찬불가를 들으며 너른 절 마당에 놓인 거대한 석상의 부처님을 알현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그러고는 대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쭉 올라가다 보면 중간쯤으로 짐작되는 곳에서 실안마을과 산성 방향의 양 갈래 길에 서게 된다.

 

백제 무왕 때 진주 남쪽 76리에 축성

먼 길은 아니나 힘들면 쉬었다 가라는 듯 놓여있는 벤치에서 잠깐 한숨을 돌려도 좋다. 숨을 고르고 난 뒤 오리나무와 갈참나무가 어우러진 길을 따라 절반만큼의 길을 다시 재촉한다. 여기쯤에서부터는 산을 오르는 내내 뒤돌아보면 바다를 관망할 수가 있다. 잔잔한 바다 점점이 늑도를 비롯한 크고 작은 섬들이 앞 다투듯 텃세를 부리는 모양새다.

그렇게 오르다보면 각산의 8부 능선쯤에서 초연히 자리하고 있는 각산산성을 만난다. 석성(石城)인 산성은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95호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남쪽 성문만이 원형대로 남아있다.

신라 선화공주와의 사랑을 노래한 설화로 유명한 백제 30대 무왕이 605년에 축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진주목본백제거열성(晋州牧本百濟居烈城)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즉 진주는 본래 백제의 거열성이었다는 뜻이다. 가야제국이 흩어져 살다가 가락국이 신라에 병합될 무렵 고령가야에 속한 진주지방을 백제가 공취하여 거열성을 두었다. 무왕 6년 2월에 각산성을 쌓았다고 하였고, 이 성은 진주 남쪽 76리(里)에 있다고 하였으니 오늘날의 각산산성이다.

 

산성에서 바라보는 전경 한 폭의 그림

또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6세기 중엽에 백제가 섬진강을 건너 진주지역을 압박하고 있다는 기록을 전하고 있어 백제가 가야진출의 거점으로 삼기위해 쌓았던 산성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그 후 고려왕조가 삼별초의 난을 평정할 때도 이용되었고, 공민왕 9년(1350년)에 왜구가 대대적으로 침략하여 각산 마을이 불탔을 때도 지역의 주민들이 이 성에서 돌팔매로 항전하기도 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그래서일까? 산성을 오르는 길, 발부리에 걸리는 돌멩이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군데군데 쌓아놓은 작은 돌탑도 그 마음이리라.

무수한 세월을 접어놓고 역사적 난세의 기록이 언제였냐는 듯이 산성 주위는 그저 평화롭고 고요하기만하다. 따사로운 햇살아래 산성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수려하다. 그러면서도 저 바다를 끝까지 지키리라는 사명이라도 간직한 듯 묵묵한 의지마저 풍겨온다. 맘먹고 해질 무렵 오르면 실안바다가 펼쳐내는 낙조의 절경도 감상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서쪽 실안 낙조․초양도 유채꽃 일품

아쉽다싶어 여기서 위로 걸음을 좀 더하다보면 각산의 정상인 봉수대에 오르게 된다. 선선한 해풍에 솔향기를 맡으며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이 참 정겹다.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96호인 각산봉수대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남해안의 여러 봉수대 중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확 트인 시야로 멀리 남해 망운산을 비롯해 다도해의 여러 섬들을 조망할 수 있으니 산성을 찾는 걸음이면 꼭 오르라 권하고 싶다.

3월로 접어들었으니 봄이 분명하다. 따뜻한 남쪽이라 이곳은 봄소식이 일찍 찾아온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찾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지만 그래도 봄철에 가장 붐빈다. 조금 있으면 삼천포대교 건너 초양도를 노랗게 물들이는 유채꽃도 볼만하다.

유난했던 강추위에 놀랐던 가슴으로 맞이하는 봄이라 더욱 애틋하다. 꽃 따라 나선 길에 산성에 올라 건강도 챙기며 역사의 무구함도 되새겨 봄직한 그런 봄날이다.

 

<경남공감> 2016년 03월호[Vol.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