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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순례】거창 거열산성

고룡이 2020. 8. 2. 00:13

【산성순례】 거창 거열산성

 

백제 부흥의 꿈 스러진 곳

군민쉼터·역사문화공간으로

 

가야의 옛 땅, 변방 역사 고스란히 간직

거창은 덕유산과 지리산, 가야산 등 3대 산악 국립공원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남부내륙의 대표적인 산간분지다. 거창읍을 중심으로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쳐 마치 엄마의 품속에 있는 듯한 지형이다. 더욱이 해발 1000m 이상의 산이 무려 23개나 되니 가히 고산천국(高山天國)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거창은 외지에서 물이 전혀 유입되지 않는 국내 대표 청정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면서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서출동류 물길은 빼어난 월성계곡을 빚으며 수승대와 거창읍을 지나 동쪽 황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굽이쳐 흐른다.

이처럼 천혜의 지형과 자연환경을 가진 거창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변방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가야의 옛 땅이었던 거창은 대가야 멸망 후 삼국이 정립할 당시 신라와 백제가 치열하게 영토를 다투었던 국경이었다. 백제 멸망 후에는 백제 부흥군이 신라에 대항한 최후의 항전지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엔 나당전쟁(羅唐戰爭)에 대비한 국난극복의 염원이 면면히 흐르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 있으니 경상남도 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는 거열산성이다.

교통전략 요충지에 쌓은 퇴뫼식 산성

거열산성은 거창읍의 북서쪽에 위치한 건흥산(乾興山572m) 정상부에 조성되어 있는 **퇴뫼식 석축산성이다. 산성의 전체 둘레 길이는 1115m이고, 성벽 높이는 5~6m. 윗부분의 폭은 2.4m 정도로 화강암이 겹겹이 쌓여있다. 축성 시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文武王) 3년과 13년에 거열성(居列城)만흥사산성(萬興寺山城)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그 역사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곳에 산성이 만들어졌을까? 그 해답은 산을 올라 보면 바로 드러난다. 건흥산 정상은 거창읍과 마리면을 모두 조망하는 곳이다. 여기에다 북서쪽은 전주로, 동남쪽은 고령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다. 또 협곡을 앞에 두고 있어 적의 공격이 어렵고, 방어에 아주 적합하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거창을 사이에 둔 신라와 백제의 공방전은 백제 멸망 후 문무왕 때 최고조에 달했다. 백제멸망 후 3년간 나라를 되찾기 위해 백제부흥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는데, 663년 신라의 장군 흠순(欽純)과 천존(天存)이 백제부흥운동군을 공략하여 700여 명을 참살하고 거열성을 함락시켰다고 한다. 또 문무왕 13년에 나당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신라 거점지역 9곳에 산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 나오는 거열주 만흥사산성이 거열산성이다.

 

산성 있는 건흥산은 예부터 거창의 진산

거열산성이 있는 건흥산은 예부터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던 거창의 진산(鎭山)으로 1983년 군립공원에지정됐다. 행정구역상 거창읍 상림리 산45-2번지, 거창읍 가지리 산156-2번지, 마리면 영승리 산87-2번지 일원에 걸쳐 있다.

건흥산은 거창읍에서 가깝고 험하지 않은데다 남녀노소 누구나 가볍게 오를 수 있어 군민들이 많이 찾는 건강쉼터다. 건흥산에는 세 갈래의 등산코스가 잘 정비돼 있다. 거창읍 거열빌라 앞미륵덤이에서 출발해 전망대-하부약수터-건흥산에 이르는 2.3㎞ 코스와 건계정주차장-하부약수터-거열산성-건흥산에 이르는 2.65㎞ 코스, 장백마을-거열산성-건흥산 정상까지 2.7㎞코스 등이다.

건흥산을 오르기 전에는 위천천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아름드리 나무터널이 이어져 봄이면 아름다운 벚꽃길이 방문객을 반긴다.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든다.

산책길을 따라 건계정까지 걷다보면 위천천의 물소리와 어우러진 새소리는 자연이 들려주는 선물이다. 건흥산 중턱 하부약수터에는 각종 운동기구가 설치돼 있다. 이곳에서 180m정도 올라가면 거열산성을 만난다. 이처럼 건흥산은 거창 군민들의 건강쉼터이자 역사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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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전하지 않은 전설

<선화공주 이야기>

 

건흥산과 거열산성에는 서동왕자와 선화공주 전설이 얽혀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이나 달리 전해오는 이야기와 사뭇 다른 내용이다.

2013년 발행된 <거창의 전설>은 거창 영승마을로 넘어오던 서동이 거창 취우재에서 국경을 경비하던 군사들에게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간첩으로 오인돼 호된 고문을 받았고, 이곳에서 절명하고 말았다고 전한다. 선화공주는 뒤따라 영승마을로 넘어왔다고 한다. 이 국경선을 거열산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흥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3km 정도 이어진 아홉 개의 봉우리를 아홉산이라 한다. 아홉산 봉우리 중 하나가 바로 취우령이다. 거창군 마리면 영승마을에서는 이 전설에 따라 매년 취우령제를 지낸다. 비운의 주인공 선화공주의 원혼을 달래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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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출동류(西出東流) 서쪽에서 솟아 동쪽으로 흐르는 물을 지칭하는 말이다. 하루 종일 햇살을 받아 귀하고 좋은 물길로 여긴다.

**퇴뫼식 산의 정상부를 둘러싸며 성을 쌓는 방식을 이른다. 마치 사발을 엎어놓은 듯하여 발권식(鉢圈式)이라고도 한다.

 

<경남공감> 2016년 07월호[Vol.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