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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순례】 의령 미타산성

고룡이 2020. 8. 1. 22:42

【산성순례】 의령 미타산성

의령•합천 옛 군사요충지서 초계분지•인근 유명 산 조망

 

미타산 9부 능선 2km 둘러싸며 축성

의령군 부림면과 합천군 적중면청덕면에 걸쳐있는 미타산(彌陀山662m). 지혜와 광명을 상징하는 부처 아미타불에서 산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그래서 미타산은 깨달음의 산으로 불린다.

북쪽으로 황강, 동쪽으로 낙동강에 둘러싸인 미타산은 합천군 대병면의 악견산성, 합천읍의 대야성, 율곡면의 백마산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 미타산에도 경상남도기념물 제231호에 지정된 미타산성이 있다. 이런 지리적 위치로 보아 가까운 합천의 산성들과 함께 이 일대의 군사요충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이다.

미타산 9부 능선을 빙 두른 미타산성 성벽은 높이 3.5m, 폭 3m에 둘레가 2㎞ 정도로 확인된다. 성벽은 대부분 돌로 쌓은 석축성이나 경사가 완만한 동쪽과 남쪽 일부는 흙을 함께 사용한 토석혼축성이다.

미타산 정상 부근의 북쪽과 서쪽은 급경사이고, 동쪽과 남쪽은 비교적 평탄하다. 성곽도 이 같은 지세에 맞춰 축조했다. 이에 따라 정상과 가까운 북쪽 성벽은 큰 바위와 절벽을 활용했다. 동쪽과 남쪽성벽은 완경사면을 따라 정상에서 먼 거리를 둘러싸며 전체면적 5만5214㎡에 이르는 성내를 감싸고 있다.

의령 미타산성

단일 성곽에 다양한 축성 양식 보여

산성 정상 부근에서 봉수대가 발견되고, 방호벽과 건물터 등이 확인됐다. 미타산성은 처음 축성된 이래로 두세 번 이상의 수축과 개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성내 곳곳에서 기와편과 토기, 자기편이 수습된 것으로 보아 오랜 기간 사용된 성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단일 성곽에서 다양한 형식의 축성 양식을 볼 수 있어 조선시대 군사방어시설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성이기도 하다.

미타산은 그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불교 색채가 강한 산이다. 미타산 동남쪽 기슭에는 작지만 유서 깊은 고찰 유학사가 있다. 신라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온다. 창건 당시 미타산 8부 능선에 있었는데, 조선 때 무학대사가 풍수지리에 맞지 않다며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미타산성은 유학사에서 미타산을 향해 북서쪽 계곡으로 난 시멘트 길을 따라 올라 의령의 대표적인 오지마을인 묵방마을을 거쳐 가는 산길과 유학사 왼쪽 미타산계곡길로 접근할 수 있다. 두 길은 등산객들이 주로 이용하지만,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아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 있어 주의를 요한다. 등산객들은 합천군 적중면 옥두리와 청덕면 두곡리의 경계인 동부로 고개에서 오르기도 한다.

 

초입까지 차량 접근…탐방하기 쉬워

미타산성을 편하게 오르는 길도 있다. 부림면 소재지 신반리에서 죽전마을과 월전마을을 거쳐 능선을 따라가는 시멘트길이다. 승용차로 산성 1㎞ 정도 아래에 있는 미타산약초농원까지 접근할 수 있다. 농원 에서 말끔히 복원된 산성까지 비포장 임도가 나 있어 차가 다닐 수 있지만, 전륜구동 SUV차량이 아니면 가기 힘든 길이라 걷는 게 좋다.

중북부 경남에 자리한 미타산은 서쪽으로 합천 대양면과 의령 부림면의 경계인 천황산(687m), 대양면과 의령 봉수면의 경계인 국사봉(688m)과 능선이 이어진다. 남쪽에는 봉산면과 부림면의 경계인 봉산(564m)을 마주본다. 정상 북쪽 바로 아래에는 합천 초계분지가 내려다보인다.

남동쪽에는 예부터 의령 동부의 중심지였던 부림면 신반, 동쪽으로는 낙동강을 건너 멀리 창녕으로 연결된다. 날씨가 맑을 땐 정상에서 멀리 서쪽의 황매산, 북쪽의 가야산, 동쪽의 화왕산 등 경남 내륙의 유명 산들을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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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신정권 권력자 이의민 최후 맞은 곳

■전해오는 이야기

 

깨달음의 산이라 불리는 미타산은 듣기에도 섬뜩한 칼부림의 산으로도 불린다. 고려말 무신정권 때 천민 출신 장군 이의민이 미타산에서 최충헌 형제의 칼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방송의 역사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됐던 이의민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다. 당대 최고 권력자였던 이의민의 아들 이지영이 최충헌의 동생 최충수의 비둘기를 강탈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일로 앙심을 품은 최충수는 형 최충헌에게 이의민 일당을 제거할 것을 제안한다. 이에 최충헌 형제는 군사를 이끌고 이의민이 머물고 있던 미타산 별장을 급습해 무방비 상태였던 이의민을 척살한다. 일각에서는 당시 이의민이 머물렀던 별장이 미타산 8부 능선에 있었던 유학사였을 것이라고 추정하지만, 이에 대한 기록이 없어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이의민이 의령 미타산에서 척살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경남공감〕 2016년 10월호(Vol.43)

/글·사진 최춘환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