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순례】 남해 대국산성
남해 성곽 중 최초 축성된 산성...내기에 얽인 슬픈 전설 전해
경상남도기념물 제19호인 대국산성(大局山城)은 남해군 내에 흔적을 남기고 있는 성곽 18곳 중 최초로 축성된 산성이다. 설천면 진목마을과 비란리, 그리고 고현면 남치마을의 경계지점인 해발 376m 대국산 정상에 있다. 자연석을 겹겹이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정상에 위치한 석성과 외곽에는 토성으로 이루어져 있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다.
<삼국사기지리지>에 통일신라 신문왕 10년(690) 해중(海中)의 섬 얕은 구릉에 전야산군(轉也山郡)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 치소를 보호하고 왜구들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대국산성을 쌓았을 것으로 보인다. 전야산군이라는 지명은 경덕왕 때 남해군(南海郡)으로 개칭된다. 이 때 영현(領縣)으로 설치했던 난포현(蘭浦縣)은 본래 내포현(內浦縣)이고, 평산현(平山縣)은 본래 평서산현(平西山縣, 혹은 西平)이다. 난포와 평산이라는 지명은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다
신라 신문왕 10년 왜구 감시위해 축조
대국산 정상은 배후에 악치곡산(457m)과 금음산(482m)을 두고 사모관대 모양으로 우뚝 솟은 사모봉이며, 정상부 없이 사방이 급경사로 된 말 안장 모양의 혁봉이다. 이에 따라 산성의 지형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
높이 5~6m, 폭 2.4m에 둘레 1.5km인 대국산성은 동편 입구에 칠성당 흔적이 있다. 그리고 성내 중앙에 건물터, 3단으로 축조된 연못터, 망루터가 남아있다. 이들 유적과 유물을 종합해 보면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초반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대국산성에 오르면 가까이는 호수 같은 강진만을 비롯해 설천면과 고현면 일대가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멀리 창선도와 사천시, 남해의 영산 금산과 진산 망운산, 그리고 남해읍과 호국의 바다 관음포도 눈에 들어온다. 하동군과 광양시, 광양제철소까지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노량과 해도원수 정지 장군의 관음포대첩지, 고려대장경 판각성지로 추정되는 곳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한 처녀를 사랑한 형제의 슬픈 이야기 담아
대국산성에는 내기에 얽힌 슬픈 사연의 두 전설이 전해온다. 하나는 옛날 대국산 아래 비란마을에 사이좋은 청이라는 형제가 살았다. 그런데 두 형제는 같은 마을에 마음씨 착한 한 처녀를 서로 사랑하게 되었는데 서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이 동생에게 제안을 한다.
제안 내용은 처녀가 두루마기 한 벌을 짓는 동안 형은 30관의 쇠줄을 발에 묶고 20리 길을 갔다 오고, 그동안 동생은 대국산에 있는 돌로 성을 쌓는 것이었다. 처녀가 두루마기를 완성하기 전에 먼저 임무를 완수하는 쪽이 처녀와 같이 살기로 했다.
어느 가을, 달 밝은 보름날 밤 두 형제는 시합을 시작했다. 그런데 결과는 아우가 먼저 성을 쌓았다. 그래서 약속한 대로 동생은 처녀와 같이 살게 되었고, 형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훗날 왜구의 침략이 심해지자 마을 사람들은 이 성을 이용하여 왜구를 물리치고 마을의 안녕을 지켰다는 이야기다.
사악한 후궁과 천 장군 칠시녀의 슬픈 전설도
또 다른 전설은 고려 경종 때의 이야기다. 경종에게는 마음씨 착한 왕비와 악한 후궁이 있었는데, 왕은 아들을 먼저 낳는 사람에게 왕비의 직책을 주겠다고 하였다. 얼마 후 왕비는 아들을 낳고, 후궁은 딸을 낳는다. 그러자 왕은 후궁에게 천 장군과 칠시녀를 딸려 전라도로 귀양을 보냈다. 사악한 후궁이 천 장군을 유혹하니 천 장군은 후궁을 죽이고 칠시녀와 함께 남해도로 도망을 하였다고 한다.
이때 천 장군은 이곳에 성을 쌓고 칠시녀는 갑옷을 지었는데, 완성된 성에는 활을 쏠 구멍이 없고 갑옷에는 옷고름이 없었다. 불길한 징조라고 생각한 천 장군은 칠시녀를 모두 죽였다는 슬픈 전설이다.
이후 대국산성에 천 장군과 칠시녀를 모시고 오랫동안 제를 지내온 사당이 있었는데, 조선 후기에 남해읍 성안으로 사당을 옮겼다고 하나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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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뫼식 산성 낮은 구릉의 산정에 둘러쌓은 산성으로 삼국시대 국경지방에 많이 분포한다. 산정식(山頂式) 산성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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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대국산성과 관련이 있으려나?
<남해군에서 도내 최초 백제 유물 출토>
최근 대국산성 아래 마을에 분포한 분묘에서 경남 최초로 백제계 석실과 유물이 출토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남해군은 지난 1월 9일 고현면 남치리 분묘군 발굴조사현장에서 계명대학교 사학과 노중국 교수를 비롯한 학술자문위원과 군 관계자 등이 참여한 학술자문회의를 열고 분묘군에서 백제 사비기(538~660) 무덤인 횡구식석실묘 1기와 은화관식 1점이 출토됐다고 공식 확인했다. 10여기의 봉분이 분포하고 있는 남치리 분묘군은 그 동안 고려 때의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곳에서 백제계의 석실이 확인되고 있어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조성된 분묘군으로 판명됐다. 백제 사비기는 대국산성을 쌓았다는 신라 신문왕 당시와 거의 같은 연대다.
<경남공감> 2014년 02월[Vol.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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