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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근대건축문화유산 투어-2] 밀양 하부마을 시간여행길

고룡이 2020. 10. 30. 13:40

[경남근대건축문화유산 투어-2]

시간 거스르는 묘한 느낌 다가오는 곳

<밀양 하부마을 시간여행길>

 

자연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타임슬립

 

알 수 없는 이유로 시간을 거슬러 먼 과거나 미래에 떨어지는 현상을 타임슬립(time slip)이라고 한다. 자연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초상현상(超常現象)이다. 의도적으로 시간을 거스르는 타임머신을 이용한 시간여행과 다른 개념으로 사용되면서 판타지소설이나 아동문학에 자주 등장한다.

 

시대물 영화드라마세트장에서 경험하는 묘한 느낌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 느낌은 옛 건물이나 거리가 실제 존재하고, 그곳에 현재 사람들이 살고 있으면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밀양 삼랑진이 대표적인 곳이다.

 

삼랑진은 밀양강(옛 이름 응천강凝川江)이 낙동강 본류에 흘러들어 세 갈래 물결이 일렁이는 나루라는 뜻을 가진 지명이다. 예부터 영남대로와 접속하는 수운의 요충지로 조선후기 낙동강의 가장 큰 포구였다. 1765(영조41) 삼랑창(三浪倉)과 후조창(後漕倉)이 설치되어 밀양, 현풍, 창녕, 영산, 김해, 양산 등 낙동강 유역 여섯고을 물자의 최대 집산지였다. 밀양의 동남부에 위치했다고 해서 하동면으로 불리던 이곳은 1928년 삼랑진면으로 개칭되고, 1963년 읍으로 승격될 만큼 근대는 물론, 현대에도 번창했다.

 

일제 때 근대건축물 원형 유지하며 보존

 

하지만 육로교통의 발달로 조창이 없어지면서 교통의 요지이자 교류가 많았던 삼랑진은 가장 먼저 시대 흐름의 큰 물결에 휩쓸린다.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고, 곧이어 경전선 삼랑진~마산 구간 개통으로 읍의 중심이 삼랑리(낙동)에서 송지리로 이동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경부선과 경전선이 갈라지는 곳에 위치한 삼랑리는 지금은 없어진 경전선 낙동강역이 있었던 데다 한참 동안 수운(水運)이 공존하면서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활발했다. 낙동강 나루가 있던 하부마을과 바로 아래 하양마을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마을로 남아있는 역사적 배경이다. 밀양 하부마을 시간여행길이라는 이름으로 경남근대건축문화유산 투어길에 선정될 만큼 일제 강점기 근대 건축물이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며 보존된 곳이기도 하다.

 

시간여행길은 삼랑진읍 시가지에서 하부마을로 이어주는 하양마을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양마을에 들어서면 찻길과 텃밭을 사이에 두고 낡았지만 예전엔 근사했을 듯한 빛바랜 노란색 지붕의 건물이 보인다. 경남 근대건축문화유산 60선에 선정된 장주복 가옥이다. 일제강점기 금융조합 건물로 사택과 접해 제법 큰 규모를 갖추고 있다.

 

옛 철도관사소학교 건물 주택으로 사용

장주복 가옥(옛 금융조합 건물)

길에서 만난 김대성(61) 하양마을 이장은 "2층이던 금융조합건물을 중간에 개조해 단층으로 만들었다""큰 가마솥을 걸어놓은 목욕탕도 있었다"고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렸다. 김이장은 또 "예전에 나루터가 있던 하부마을에서 큰 배가 차를 싣고 강 건너 김해 생림면을 오가는 모습이 기억난다""그 때는 동네에 활기가 넘쳐났는데, 지금은 오지로 전락했다"고 회상했다.

 

김 이장의 회상대로 하부마을은 조선후기 낙동강 수운 나루터에 이어 일제강점기 때 철도교통의 거점이었던 만큼 당시 철도관사와 창고, 철도시설 등이 지금까지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며 남아있다. 옛 낙동역 철도관사(오분이 가옥)와 옛 삼랑진소학교(배영백 가옥)를 비롯해 이달주 가옥, 박금옥 가옥 등 지금도 사람이 살면서 마을의 현대식 건물과 어울려있다. 일제강점기 때 한국인 목수 정갑수씨가 지었다고 전해오는 박희수 창고는 외벽에 녹슨 양철슬레이트를 덧댄 채 아직까지 창고로 사용되고 있어 인상적이다.

 

콰이강의 다리 시간여행에 운치 더해

 

이렇듯 근대역사의 현장인 이곳은 낙동강변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길과 생태공원이 어우러져 주말이면 외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세 갈래 물결과 더 가까운 상부마을 낙동강변에는 이색적인 모습의 카페와 펜션이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하부마을이 있는 삼랑진읍에는 볼만한 자연경관과 의미 있는 역사문화유적이 많다. 우선 하부마을과 강 건너 김해시 생림면 마사리를 연결하는 옛 삼랑진교(낙동인도교)가 콰이강의 다리라 불리며 시간여행에 운치를 더한다. 생림면 마사리에는 김해시가 경전선 폐선 유휴 부지를 활용해 조성한 낙동강레일파크가 지난 429일 개장해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민씨 5형제의 효성과 우애를 기리는 상부마을의 삼강사 비(三江祠 碑), 한국철도근대문화유산이면서 등록문화재 제51호인 삼랑진역 급수탑, 바위에서 종소리가 나서 밀양의 3대 신비로 꼽히는 만어사 만어석(萬魚石), 고려시대 교통국방 요지에 설치됐던 작원관지, 산정호수가 있는 천태산, 국내 최대 양수발전소인 삼랑진양수발전소 등이 타임슬립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한다.

 

/경남공감 201605[Vol.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