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근대건축문화유산 투어-4]
일제 수산업 전진기지 흔적 곳곳에
<통영 청마거리>
유치환이 편지 보낸 우체국 지금도 있어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에도 근대건축문화유산으로 보존할 만한 구조물과 건축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의 현장이지만, 예향의 고장 통영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만하다.
일제 당시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교류가 활발했던 통영은 서양 문물을 빠르게 접하는 곳 중의 하나였다. 1914년 봉래좌라는 근대식 극장이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화살롱 역할을 하는 다방도 생겼다. 1930년대에는 영화사가 2곳이나 있었다고 한다. 또 수산업이 발달해 영남에서 부산과 대구 다음으로 납세액이 많았을 정도로 부촌이었다고 하니, 통영 출신 예술가들이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으리라.
통영을 대표하는 문인 청마 유치환이 시조시인 이영도에 대한 사랑을 5000여 통의 편지에 담아 보냈던 중앙동 우체국은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부터 세병관(국보 제305호)까지 200m 남짓한 거리가 경남도가 선정한 근대건축문화유산 10개 투어길 중 하나인 통영 청마거리다.
항일운동 증언하는 건축물도 원형 보존
1889년 일본인의 조선 해역 어업활동을 합법화한 조일통어장정(朝日通漁章程)이 체결된 후 일본인들은 대한해협을 수시로 넘나들었다. 자연히 통영이 그들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통영에 대거 눌러앉은 일본인들은 해안을 매립하고, 어업권과 각종 상권을 독차지했다. 계속되는 수탈에 조선인들의 불만은 커지고, 통영 지역 곳곳에서 항일운동이 이어졌다.
이 지역 항일운동의 거점이었던 옛 통영청년단 회관(등록문화재 제201호) 건물은 청마거리에서 걸어서 5분이면 닿는 문화동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다. 3•1운동을 주도한 박봉삼 열사를 단장으로 통영지역 우국청년들이 독립운동을 벌이기 위해 결성한 청년단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지역민들의 성금으로 1923년 건립했다.
지금 이 건물은 충무고등공민학교와 통영문화원이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외관은 붉은 벽돌로 지은 2층 건물 한가운데 현관을 둔 좌우 대칭 모양으로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배수시설 지으면서도 민족혼 말살 기도
문화동에서 또 다른 근대건축문화유산을 만난다. 1933년 건립한 문화동 배수시설(등록문화재 제150호)로 당시 이 지역에 물을 공급한 상수시설이다. 지금은 출입이 금지돼 통영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서포루 언덕에 올라야 볼 수 있다.
육각의 낮은 돔형 지붕 위에 작은 첨탑을 세워 장식한 바로 크식 건축물은 일제가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임진왜란의 혼이 깃든 통제영 안의 사당을 헐고 지었다. 이에 지난 2004년 한 시민단체가 첨탑을 부수고, 일본 천황을 찬양하는 뜻의 천록영창(天祿永昌)이라는 글귀를 시멘트로 지워버렸다.
도천동에 위치한 옛 통영군청(등록문화재 제149호) 건물도 건립 당시의 외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광복 직전인 1943년 건립해 1995년까지 군청으로 쓰이다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합된 후 통영시청 별관으로 사용됐다.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철거될 위기에 처했으나, 2002년 윤이상 페스티벌하우스라는 세계적인 음악가를 기리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이어 2013년 9월 전면 개보수를 거쳐 현재는 통영시립박물관으로 이용 중이다.
1907년 형성된 일본인 이주촌 흔적 남아
시립박물관 근처에 드문드문 자리한 오래된 건물들도 눈에 띈다. 백범 김구 선생이 묵었다는 사카이시여관이 동양모텔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영업 중이다. 통영의 맛집으로 유명한 거구장도 1936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통영 역사여행의 필수코스 중 하나인 통영해저터널(등록문화재 제201호)은 1932년 지어진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 어민의 이주가 본격화됨에 따라 통영과 미륵도 간 거리 단축을 위해 만들었다. 도천동과 미수동을 잇는 길이 483m의 콘크리트 터널 양쪽 입구에는 용문달양(龍門達陽)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용문을 거쳐 산양으로 통한다는 뜻인데, 여기서 산양은 미륵도를 뜻한다.
미륵도에 위치한 도남동 남포마을은 당시 오카야마에서 이주한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다. 1907년부터 머물기 시작한 일본인들의 숫자가 1930년대 250여명까지 늘어나면서 이곳에는 신사, 우편국, 어업조합, 순사 주재소 같은 근대화된 건물이 즐비했다. 지금도 도남동 190번지 일원에는 비슷한 모양의 적산가옥이 일렬로 쭉 이어져 있다.
/경남공감 2016년 07월[Vol.40]
- 1943년 건립된 옛 통영군청(등록문화재 제149호•현 통영시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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