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따라 고향따라]
'처녀뱃사공'과 노래의 탄생•배경에 얽힌 이야기
처녀뱃사공 애절한 사연 담아
59년 발표…70년대 더 큰 인기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군인 간 오라버니 소식이 없네/큰 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낙동강 강바람이 앙가슴을 헤치면/고요한 처녀가슴 물결이 이네/오라비 제대하면 시집 보내마/어머님 그 말씀에 수줍어질 때/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익숙하지 않지만, 1959년 발표된 가요 '처녀뱃사공'의 노랫말이다. 가수 윤항기•복희의 아버지이자 유랑극단 단장으로 유명한 윤부길이 노랫말을 쓴 이 노래는 한복남이 곡을 붙이고 당시 인기가수 황정자가 불러 크게 히트했다.
가수 윤항기•복희의 부친 윤부길 작사
잠시 잊혔던 처녀뱃사공은 1970년대에 남성듀엣 <금과 은>이 리메이크해 다시 부르면서 더 큰 인기를 끌었다. 처녀뱃사공의 애절한 사연을 담은 노랫말이 <금과 은>의 구성지면서도 고운 음색과 어우러져 여러 세대로부터 사랑받는 국민애창곡이 된다.
처녀뱃사공 노래는 2000년대 들어 노랫말의 주인공과 배경을 둘러싸고 한 바탕 소란이 일면서 세인의 관심을 받는다. 함안군이 노래의 배경으로 알려진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악양루 인근에 2000년 10월 처녀뱃사공노래비를 세우면서다.
함안군은 노래비 뒷면에 처녀뱃사공의 실제 주인공과 노랫말이 만들어진 배경, 노래의 유래를 기록했다. 이후 노래비에 기록된 사람과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고, 사연을 얘기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여기에다 노랫말의 배경이 된 나루터의 위치와 관련 강 건너 의령군과 지역간 미묘한 원조논란까지 겹쳐 한 때 지역의 화젯거리였다.
노랫말 주인공배경 놓고 한 때 논란
논란의 초점은 "처녀뱃사공의 실제 주인공이 노래비에 기록된 사람과 다르다" "주인공의 배가 오갔던 나루터는 함안군 법수면 악양나루터다 또는 아니다, 의령군 정곡면 적곡리 나루터다" 등으로 요약된다. 또 윤부길이 처녀뱃사공을 만난 연도와 계절도 증언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연도는 1951년, 1953년, 1954년으로 나누어진다. 계절은 가을과 늦겨울(2월)로 갈린다. 하지만 노래의 배경이 남강과 함안천이 만나는 악양루 주변 나루터이며, 이곳에서 실제 처녀뱃사공의 이야기를 듣고 노랫말을 만든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유랑극단 단장이던 윤부길이 6•25때 부산에서 피난시절을 끝내고 부인 성경자씨(무용가, 예명 고향선)와 항기•복희 남매 등 가족 및 극단 단원과 함께 공연을 통해 노잣돈을 마련하면서 서울로 돌아갔다고 한다. 윤부길 일행은 이 때 함안 가야에서 대산으로 가던 길에 악양루 인근 나루터에서 처녀뱃사공이 노를 젓는 배를 탔고, 나루터 근처 그 뱃사공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때 노랫말의 내용이 되는 사연을 들었다는데 대해서는 대체로 증언이 일치한다.
낙동강이라는 지명 친근하게 작용
악양루가 위치한 곳은 남강과 함안천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낙동강은 이곳에서 남강을 따라 하류로 12km 더 내려가야 있다. 이에 따라 노랫말에 나오는 낙동강을 근거로 노래의 배경이 성주나루터 또는 낙동강 하구언이라는 일각의 주장이 있었으나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고, 신빙성이 부족해 관심을 얻지 못했다.
이와 관련 윤부길이 노랫말을 만들면서 남강 또는 함안천을 지명도가 높은 낙동강으로 바꾸었거나, 이곳을 낙동강으로 잘못 알았을 수 있다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었다. 당시 함안천을 낙동강으로 잘못 표기한 신문 기사가 있었을 정도이니 유랑극단 공연을 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곳을 지난 윤부길이 낙동강으로 오인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낙동강이라는 대중성은 이 노래가 많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하는 한 요소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시대상황 함축 사람들 가슴에 와 닿아
문화비평가 곽한주 씨는 '처녀뱃사공' 노래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대중가요로서는 드물게 구체적인 이미지와 풍부한 함축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곽 씨는 큰 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라는 부분은 당시 처녀뱃사공이라는 흔치 않은 직업을 통해 여성이 집밖 공공장소에서도 노동하기 시작한 시대적 배경을 나타낸다고 봤다. 또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앙가슴을 헤치면' '고요한 처녀가슴 물결이 이네' 등의 구절은 주인공의 여성성을 드러내면서 은연중에 남성의 관점을 깔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노래는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현장으로 불려나간 오라버니와 그를 대신해 처녀의 몸으로 뱃사공이라는 험한 일을 하면서 부모를 모시는 누이동생 등을 묘사해 당시 시대상황을 짧은 노랫말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또 어려운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면서도 오라비 제대하면 시집갈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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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말 배경 주변 함안뚝방길 인기
함안군, 마라톤 대회 등 관광상품화
남강과 합류하는 함안천 하류와 접한 야산 기슭에 1857년(철종 8년) 건립된 악양루가 있다. 이 누각 근처에 악양나루터가 있었고, 이곳이 처녀뱃사공 노래의 배경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함안군은 악양대교에서 악양루로 향하는 대산면 서촌리 도로변에 처녀뱃사공 노래비를 세웠다.
악양루에서 바라보는 남강 및 강 양쪽의 함안군 법수면과 의령군 정곡면 들판,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 등의 전경은 가히 일품이다. 마침 악양루가 서쪽을 향하고 있어 이곳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그야말로 한 폭의 동양화와 같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이곳에 누각을 짓고 시를 읊었으리라.
요즘 이곳은 함안뚝방길로 새롭게 인기를 얻고 있다. 남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의령군 정곡면을 바라보는 함안군 법수면 쪽 둑 위의 평평한 흙길은 걷기운동과 마라톤에 적격이다. 또 진양호에서 시작돼 낙동강까지 이어지는 남강변 자전거길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함안군은 이곳 둑에 쉼터와 꽃길을 조성하고, 걷기와 마라톤을 결합한 '에코싱싱둑방마라투어대회'를 지난 2009년부터 개최하면서 관광상품하고 있다.
글•사진 최춘환 편집장
[경남공감] 2013년 9월호(Vol.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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