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따라 고향따라]
'하동포구아가씨' '물레방아 도는데'와 하동군•작사가 정두수
돌담길 돌아 징검다리 건너 떠난 사람
하동포구 아가씨 잠 못 들고 울고 있네
하동노래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영남이 작사•작곡하고 부른 화개장터를 떠올린다. 화개장터는 가사와 멜로디가 정겨운데다 따라 부르기 쉬워 대중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듬어보면 하동을 배경으로 한 노래가 다른 어느 지역보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도 당대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불러 대단한 인기를 누린 노래들이다.
하동노래를 이야기하려면 작사가 정두수(77)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선생의 명성을 잘 모르는 사람도 노래 제목만 들으면 "아하, 그 노래 작사한 분이야"라고 연상할 만큼 최고의 히트곡 노랫말을 수없이 남겼다. 물론 대부분 트로트곡이라 중장년 이상에서 그 명성을 짐작할 수 있는 노래들이다.
정두수 선생은 수많은 노랫말을 만들면서 고향 하동을 언제나 가슴에 담고 있은 듯하다. 한 일간지에 <가요 따라 삼천리>라는 제목으로 가요에 얽힌 이야기를 연재한 선생은 글에서 "나는 고향을 소재로 67편에 이르는 하동 연가(戀歌)를 시와 노래로 썼다며 하동포구 아가씨를 비롯해 물레방아 도는데, 삼백리 한려수도, 꽃잎 편지, 목화 아가씨, 감나무골, 고향의 그 사람, 하동으로 오세요, 섬진강, 지리산, 아랫마을 이쁜이, 긴 세월, 섬진강 나그네, 섬진강 연가, 하동 사람, 시오리 솔밭길, 발꾸미 포구연가, 자주댕기, 노량대교, 내 고향 하동포구 등이 그것이다"라고 한 바 있다.
이 가운데 하동읍 목도리 섬진강변 하동포구공원에 노래비가 있는 '하동포구 아가씨'(하춘하 노래)와 고전면 교하리에 노래비가 있는 '물레방아 도는데'(나훈아 노래), '시오리 솔밭길'(진송남 노래)은 그의 고향에 대한 추억과 애잔함이 가장 많이 담겨있다.
<섬진강변 하동포구공원의 '하동포구 아가씨' 노래비와 돛배 모형>
선생은 고향인 고전면 성평리에서 다섯 살 때부터 3년간 부모님과 떨어져 외갓집에 살았다. 그 때 부산에 먼저 가 있던 부모 형제가 그립고 시집간 이모가 생각날 때면 하동포구가 한 눈에 펼쳐지는 뒷동산에 올라가 이모가 사준 하모니카를 부는 게 하루일과였다고 한다. 그리고 훗날 외할머니와 이모에 대한 정한(情恨)을 담아 쓴 노랫말이 '하동포구 아가씨'와 '쌓인 정'이다. 특히 '하동포구 아가씨'는 같은 제목으로 두 편의 노래를 쓸 정도로 애틋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하동포구 80리에 달이 뜰때면/정한수 떠놓고 손모아 빌던 밤에/부산 가신 우리 임은 똑딱선에 오시려나/쌍계사의 인경소리 슬프기도 한데/하동포구 아가씨는 잠 못 들고 울고 있네"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로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린 은방울 자매가 부른 '하동포구 아가씨'(송운선 작곡 1966년 발표)의 1절이다.
"쌍돛대 님을 싣고 포구로 들고/섬진강 맑은 물에 물새가 운다/쌍계사 쇠북소리 은은히 울 때/노을진 물결 위엔 꽃잎이 진다"
하춘화가 부른 '하동포구 아가씨'(박춘석 작곡 1972년 발표)의 1절이다. 정두수 선생은 두 편의 '하동포구 아가씨'와 관련 한 편의 노래로는 올올이 가슴에 맺힌 정을 지울 수 없어 한 곡을 더 지었다고 회상했다.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 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갈 때/뒤돌아보며 서울로 떠나간 사람/천리타향 멀리 가더니 새봄이 오기 전에 잊어버렸나/고향에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가는데"
나훈아가 부른 '물레방아 도는데'(박춘석 작곡 1972년 발표)는 정두수 선생의 대표적인 고향노래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발악을 하던 일제가 우리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끌고 갈 때 학병이라는 띠를 두르고 성평리를 떠나던 선생의 삼촌을 소재로 했다.
<하동군 고전면 교하리의 정두수 노래비공원과 '물레방아 도는데' '시오리 솔밭길' 노래비>
지금 선생의 생가가 있는 성평마을과는 약간 떨어졌지만, 금오산과 고전면을 휘감아 흐르는 주교천 교하교 아래에 징검다리가 놓여 있고, 하천변 노래비공원에 '물레방아 도는데' '시오리 솔밭길' 노래비와 함께 물레방아를 설치해 옛 정취를 재현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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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
•정두수 선생은
1937년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문예에 관심이 많아 어릴 때부터 동시(童詩)를 쓰고, 동래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시 동인지 '올베'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다.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현 중앙대학교)에 다닐 때는 창시와 서사시, 대하 영상시를 많이 썼다.
1962년 방송가요 '즐거운 여름' '포푸라가 있는 길' 등을 발표하면서 본격 작사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선생은 고향 하동을 소재로 한 노래 외에도 남진의 '가슴 아프게', 이미자의 '흑산도아가씨',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 들고양이들의 '마음약해서, 진송남의 '덕수궁 돌담길', 문주란의 '공항의 이별', 조용필의 '잊기로 했네'와 '뜻밖의 이별', 패티김의 '나는 가야지', 정훈희의 '그 사람 바보야', 여운의 '과거는 흘러갔다', 강정화의 '안개 낀 고속도로' 등 수없이 많은 노랫말을 만들었다.
시인이기도 한 그는 4권의 시집과 「알기 쉬운 작사법」, 「한국가요걸작선 해설」 등의 저서도 있다. 지금까지 지은 시와 가사가 3,500여편에 이른다.
하동군민상을 비롯해 국제가요 작사상, 제1회 한국예술윤리위원회 본상, 제1회 한국가요상 작사상, 무궁화 대상, 방송가요 대상, 한국문학 예술상, 대한민국연예공로상 등 50여 차례 수상기록을 갖고 있다.
대중예술계에서는 한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글•사진 최춘환 편집장
[경남공감] 2014년 12월호(Vo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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