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항포해전 승리 이끈 숨은 주역
고성 의녀(義女) 기생 월이
고성향토문화선양회 문화콘텐츠 육성
2016년 7월 23일 오후 고성군 고성읍 소재 고성박물관 1층. 최평호 고성군수를 비롯해 군민 2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녀(巫女)의 몸을 빌린 조선시대의 한 처자(處子)가 "살던 집과 동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며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무덤이 없다며 비녀와 가락지, 고운 치마저고리와 함께 묻어달라고 주문했다. 혼백을 불러온 무녀는 처자의 이름이 서버들로 형편이 좋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열여섯 살에 기생이 되어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죽었다고 말해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재경고성군향우회의 문화계 출신 향우들로 구성된 '고성향토문화선양회'(회장 박서영)가 마련한 월이 초혼제에 400여년 전 처자가 나타나 자신이 실존 인물임을 현시대 사람들에게 알린 것이다.
이 처자는 고성의 의녀(義女)로 불리는 기생 월이(月伊)다. 지난해 월이 초혼제와 월이 탐방로 걷기 등의 행사를 개최한 고성향토문화선양회는 올해 당항포대첩 축제에 '월이랑 모두랑' 행사를 개최키로 하는 등 월이를 고성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 육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렇게 고성 대표 문화콘텐츠로 거론되는 월이는 어떤 인물일까? 월이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고성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왔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월이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의 함선 26척을 모두 격파하고, 왜적 3500명을 섬멸한 당항포해전을 승리로 이끈 숨은 주인공이다.
남해안 살피러 온 왜적 첩자 지도 조작
이야기는 이렇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한 해 전인 1591년 왜의 첩자가 경상도 남해안의 지리와 지형을 살피고 지도를 작성하며 고성 땅에 도달해 월이가 기생으로 있던 주막에 들렀다. 그런데 술에 곯아떨어진 그 사람의 품 속에 여러 겹으로 싼 보자기가 보였다. 이를 예사롭지 않게 본 월이가 열어보니 남해안의 지도와 육상 도주로 등이 상세히 그려져 있었다. 월이는 그 지도에 소소포(지금의 마암면 마동호 간사지)와 죽도포(지금의 고성읍 수남리 앞바다)가 바다로 이어진 것처럼 그려 넣은 후 보자기를 첩자의 품에 전과 같이 안겨 놓았다. 다음해 조선을 침공한 왜적은 제1차 당항포해전에서 조선수군에게 대패해 거의 전멸하게 된다. 이순신 장군의 전략과 거북선의 위력에 밀린 왜적이 월이가 조작한 지도의 소소강을 따라 고성 바다로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지도에 표시된 물길이 없어 되돌아오다 조선수군에 대패한 것이다. 이 같은 이야기는 시인이자 향토사학자인 정해룡의 역사소설 조선의 '잔다르크 월이'에 잘 묘사돼 있다. 정해룡의 소설이 아니라도 월이는 이순신 장군의 '당포파왜병장계'에 기록돼 있는 실존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진주 의기 논개에 관한 이야기가 유몽인이 쓴 '어유야담'에 기록된 것을 토대로 전해온 것을 보면 고성 의기 월이의 발자취와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 애국충절을 기리기에 충분하다는 게 고성향토문화선양회를 비롯한 고성 사람들의 의견이다.
속싯개 등 관련 스토리텔링 소재 풍부
고성에는 월이 이야기를 지역 브랜드 제고와 역사문화관광상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소재들도 많다. 우선 소가야 도읍지를 알 수 있는 송학동고분군을 비롯해, 고분군 정비사업으로 모두 철거됐지만 고분군 주변에 8.15해방 후에도 한참동안 있었다는 주막집들, 그리고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기생들이 춤을 추었다는 무기산 아래의 정자 무기정(舞妓亭)과 마을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했다는 우물 무기정(舞妓井) 등을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월이가 지도로 속였다는 데서 유래된 속싯개(마암면 두호리 간사지 끝자락) △왜적의 머리가 바닷물에 밀려왔다는 머릿개(마암면 두호리) △왜병을 잡은 갯가라는 잡안개(회화면 남쪽 해안지대) △전투로 골짜기가 피로 물 들었다는 핏골(회화면 당항리 동쪽 골짜기) △왜병이 도망간 길목에서 비롯된 도망개(동해면과 거류면의 경계) △군사가 진을 쳤던 군진(軍陣)이 변한 군징이(동해면 장기리 서쪽 작은 마을) 등 당항포해전 격전지였던 당항만을 둘러싼 옛 지명들도 스토리텔링의 좋은 소재다. 고성군은 당항포해전과 기생 월이, 이들 지명 등에 얽힌 이야기를 볼 수 있도록 당항포관광지 내에 있는 당항포 해전관에 꾸며놓았다.
/출처【경남공감】 2017년 1월호[Vol.46]
/글․사진 최춘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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