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인물

임경란 뜨개질 나눔 할머니

고룡이 2017. 10. 19. 10:42

‘뜨개질 나눔’ 임경란 할머니    <경남공감 2016년 12월호>

한 올 한 올 이어지는 털실 덧버선 되어 온기 전한다



"내가 가진 작은 재주로 어려운 이웃들이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겨울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덧버선을 만들었습니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 글 최춘환 편집장

지난 111일 합천군을 찾아 손수 뜨개질해 만든 덧버선 100켤레를 기탁한 임경란(79)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임 할머니는 이날 털목도리와 털모자도 30개를 함께 기탁했다. 이번 기탁으로 널리 알려진 할머니의 '뜨개질 나눔'2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해인사 스님들의 승복을 만들어주는 일을 그만두면서부터다.
경북 고령 출신인 할머니는 스물세 살 때 결혼해 고령읍에 살다가 우체국에 근무하던 남편이 해인사우체국으로 전근 오면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해인사 아랫동네인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에 자리 잡았다. 서른두 살 때다.
그때부터 27년간 해인사 스님들의 승복 만드는 일을 했다. 요즘은 승복도 기성복이 많이 나오지만 예전엔 대부분 주문해 옷을 지었다고 한다. 당시 해인사 승복 만드는 데가 한 곳뿐인 데다 행자들이 계를 받을 때는 한꺼번에 주문이 밀리기도 했다. 어떤 땐 광목을 한 트럭씩 사와 옷을 짓기도 했다. 무명의 누른색을 빼기 위해 빨고, 부드럽게 하려고 다듬이질하는 작업부터 했다. 그리고 먹물을 들여 말린 후 옷을 지었으니 예삿일이 아니었다.

"처음 승복을 만들 땐 한 벌에 1200원 정도 받은 걸로 기억해. 돈 없는 스님들에겐 무료로 만들어주기도 했지. 대신 여유가 좀 있는 스님들은 옷값을 두 배로 주기도 했으니 샘샘이야.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큰스님 중에도 행자 때부터 내가 만든 옷을 입은 스님이 많아." 할머니는 스님들의 외투인 누비두루마기도 바느질로 만들었다. 추울 때 받쳐 입는 스웨터도 짰다. 뜨개질은 그때 다져진 실력이다.
승복 만드는 일을 그만둔 할머니는 심심풀이로 뜨개질을 이어갔다고 한다. 스웨터같이 큰 옷가지는 시간이 많이 걸려 빨리 만들 수 있는 덧버선을 주로 짰다. 털목도리와 털모자를 중간중간 짜기도 한다. 그게 하나 둘 모이면서 처음엔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줬다. 집에 놀러온 사람들이 한두 켤레씩 가져가기도 했다.
그러다 10여 년 전부터 차곡차곡 모인 덧버선을 삼가요양원, 초계요양원, 해인사자비원 등 인근 노인복지시설에 주로 기부해왔다. 남편의 전 직장 동료였던 이석희 전 해인사우체국장과 함께 털모자와 덧버선을 짜서 해인사 스님들에게 선물하면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매년 연말에는 임 할머니가 단원으로 활동하는 가야면체조단원 70·80세 노인잔치 겸 송년회 때 선물로 내놓기도 한다. 이석희 전 국장은 지금도 털실을 지원하면서 할머니의 '뜨개질 나눔'에 동참하고 있다.

할머니가 지금까지 나눠준 덧버선만 족히 1000켤레는 될 것이라고 한다. 1켤레를 완성하는 데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에는 4000시간이 훨씬 넘는 시간도 녹아 있다. 심심풀이로 시작했다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할머니는 '뜨개질 나눔'뿐만 아니라 적십자봉사활동을 비롯해 몸으로 봉사하는 일에 적극 참여한다. 서해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땐 봉사단과 함께 해안가 기름 닦는 봉사도 했다. 가야면체조단원 회장으로 있을 땐 단원들을 이끌고 전국대회에 나가 1등을 하기도 했다.
남모르게 나눔을 이어오고 있던 할머니가 합천군에 덧버선을 기탁하게된 것은 우연하게 이루어졌다.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할머니의 짐을 들어주던 가야면보건지소 이선희 주무관이 집에 들렀다가 쌓여 있는 덧버선을 보고, 지난 이야기를 듣고는 합천군을 통해 기탁하도록 소개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해. 아침에 방바닥을 쓸면 털 부스러기가 수북이 나오기도 하지. 기관지에도 안 좋을 건데 저러고 있어.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어쩌겠어." 옆에 있던 남편 이해용(82) 할아버지가 한마디 거들었다. 할머니는 겸연쩍어하며 "뜨개질이 앉아서 하는 일이다 보니 허리가 굵어진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