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덕 경상대학교 교수 <경남공감 2016년 9월호>
변사로 분한 ‘장터 원숭이’ 재미와 감동, 교훈 함께 주다
/ 글 최춘환 편집장
시골마을서 강좌 대신 무성영화 상영
한여름 뙤약볕이 서산을 넘어갔지만 열기가 여전한 지난 7월28일 저녁 사천시 곤명면 완사마을 회관. 사천문화재단과 경상대학교 인문학연구소가 주관하는 '찾아가는 인문학강좌-영화로 만나는 인문학'이 열리는 마을회관 강당에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날 강좌 주제는 <'검사와 여선생' 영화로 만나는 인문학>.
사실 강좌라기보다 무성영화 상영이다. 하지만 추억의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의 애잔한 스토리에 재치 있는 애드리브로 진행하는 변사의 대사는 여느 강좌보다 감동과 교훈을 주기에 충분 했다. 강당의 조명이 어두워지는 것과 함께 모시옷에 분홍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중절모를 쓴 사람이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에~에~에~'라는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등장한다.
대부분 60대 이상인 50여명의 관객들은 이색적인 모습에 신기해하면서도 친근한 노랫가락에 어깨를 들썩인다. 강당 전면에 이른 중절모 사내가 변사의 대사조로 어르신 세대들의 삶과 우리 사회의 발전과정을 간략하게 읊은 후 "아버님, 어머님들의 땀방울로 이만큼 잘살게 됐습니다"라는 마지막멘트에 이어 가요 '여자의 일생'을 부르자 할머니 관객들이 호응하며 따라 부른다.
흥 돋우며 시골 어르신들과 함께 호흡
중절모 사내는 '장터 원숭이'로 유명한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한상덕(58) 교수. 이날 상영하는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의 변사로 분한 한 교수는 등장 모습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영화 상영 중 대사를 읊을 땐 배역과 장면에 따라 목소리와 톤을 바꾸면서 관객들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였다.
여선생이 숨겨주던 살인범이 형사들에게 잡혀 오랏줄에 묶이는 장면에서는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어라'라는 요즘 노래 '사랑의 밧줄' 노랫가락을 곁들이는 애드리브로 웃음을 자아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변사의 애드리브는 끝나지 않았다.
다시 무대 전면에 선 한 교수는 '쨍 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 '해뜰날'로 흥을 돋우면서 힘든 시절을 고생하고, 견디면 언젠가 희망의 날이 온다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며 마무리했다.
이렇게 지역민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그의 공연은 우연하게 시작됐다. 하동군 공무원인 친구가 어느 날 "전통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하는데 뾰족한 방법이 없다"며 "한 교수가 연극을 좋아하니까 장꾼들을 위로하고, 시장에 온 사람들에게 볼거리도 제공할 겸 연극을 좀 해주면 어떻겠나"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 2011년 4월부터 하동읍 하동공설시장에서 매월 2일 첫째 장날을 공연일로 잡았다.
고향 하동 장터서 원숭이공연으로 시작
처음 공연은 원숭이로 분장한 배우가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장터 관객과 호흡하는 형식이다. '하동포구 팔십리' 등 하동을 배경으로 한 노래도 끼워 넣어 흥을 돋운다. 1시간 10분 정도 진행되는 공연에서 10분 정도는 부채춤과 농악, 색소폰 연주 등 게스트공연으로 1인극의 단조로움을 덜어주기도 했다.
2012년에는 하동군 내 면지역 소재 장터로 무대를 옮겼다. 공연 대본에는 주로 하동사람들의 미담과 정을 이야기로 풀어가는 내용을 담았다. 녹차로 만든 사탕과 하동배로 만든 술을 비롯해 재첩국과 취나물도 등장시키고, 이를 나눠주면서 지역 특산물이 자연스럽게 홍보되도록 했다.
이어 2014년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악양면에 있는 지리산생태과학관에서 고향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거지 1인극 공연을 했다. 이 공연에서 그는 "나는 행색이 초라한 거지지만 머리와 가슴속에는 클 거(巨) 지혜 지(知), 즉 큰 지혜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좁아 큰나라 중국을 알기 위해 중국어를 공부한다"며 중국 노래 가사와 악보를 복사해 나눠주고 같이 노래하며 가르치기도 했다.
원숭이 1인극에서 시작한 그의 공연은 거지 1인극에 이어 무성영화 변사까지 역할을 바꾸어가며 이어지고 있다. 재능기부형태로 펼치는 그의 공연에는 어렵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 온 옛 시절과 고향·가족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고향서 초중고 나와 중국서 박사학위
사실 그는 고교 때 왠지 모르지만 변사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때의 생각과 연극 전공을 살려 일제강점기 신파극이자 1958년 영화로 만들어져 오랫동안 우리 국민들의 심금을 울린 '검사와 여선생'을 갖고 고향과 고향사람들을 위한 재능기부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하동군 화개면에서 4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고향에서 부덕초등학교와 화개중·하동종고(현 하동고)를 거쳐 경상대 중어중문학과를 1회로 졸업하고 성균관대에서 석사학위를, 서른다섯에 중국으로 유학 가 마흔 가까이 돼서야 박사학위를 받았다. 석사과정은 중국고대연극을, 박사과정은 중국현대연극을 전공했다.
대학 입학 후 연극동아리에 들어가면서 대학생활의 절반정도를 동아리 활동에 쏟을 만큼 연극에 심취했다고 한다. 석·박사 과정에서 중국연극을 전공한 것도 대학 전공과 좋아하는 연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였다고 한다.
그는 박사학위 취득 후 중국 호북대학교 교수를 거쳐 고국에서 교수가 되고자 1998년 귀국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교수가 되는 게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2008년까지 11년간 모교인 경상대학교에서 시간강사를 거치고 2008년 그의 나이 쉰 살에야 전임교수에 임용됐다.
재능기부 공연에 가족들도 적극 동참
'교수가 장터에서 원숭이가 되어 뒹군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는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여러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방송에서는 다큐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방영하기도 했다.
원숭이 공연은 1인극이라 애로가 많았다. 대본에 따라 극을 전개할 수밖에 없는데, 관객이 대부분 같은 사람들이라 비슷한 내용으로는 식상하기 때문이다. 애드리브로 즐겁게 해주다가 3회 공연부터는 당초 대본의 40% 정도는 각색했다.
그러면서 그의 아버지가 즉석에서 출연하기도 했다. 장터를 돌아다니는 원숭이가 시골 어르신에게 이발을 해주는 장면에 아버지를 배역으로 등장시킨 것이다. 여동생이 배역에 등장하기도 했다.
고물상인 원숭이가 이고을 저 고을 돌아다니다 보니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채 여생을 함께하는 어르신들이 있었고, 이분들에게 식을 올려주는 이야기 장면에서다. 신랑 배역은 구했는데, 상대역을 할 신부를 구하지 못했다. 40대 중반인 여동생이 칠순의 어르신과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연출해 장터를 한바탕 웃음도 가니로 만들었다.
이렇듯 돈 되는 일이 아닌데도 그가 하는 일에는 가족들이 적극 나선다. 아내는 공연이 있을 때면 매니저 역할을 한다.
부모형제는 그가 오랜 세월 힘들게 공부해 교수가 된 것을 대견해하는 듯하다. 그도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고향사람과 고향을 위한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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