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욱 경상남도 해외통상자문관 <경남공감 2016년 11월호>
아프리카에 경남을 심는다
경남도는 지난 10월 4일부터 7일까지 해외통상자문관 워크숍을 가졌다. 미국과 중국, 짐바브웨,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인도, 미얀마 등에서 활동하는 자문관 11명이 참여했다. 자문관들은 워크숍 첫날 홍준표 도지사와 간담회를 시작으로 경남미래 50년 사업의 핵심 전략산업인 항공산업의 메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둘러보고, 사천 현지에서 국제통상관계자 간담회를 가졌다. 이어 다음날에는 함양물레방아골축제 농산물엑스포장 견학과 상림공원을 둘러보고, 경남미래 50년 한방항노화산업의 중심지 산청 동의보감촌에 들러 한방체험을 했다. 짐바브웨에서 활동하는 김근욱 해외통상자문관을만 났다.
/ 글 최춘환 편집장
국내 사업실패 후 짐바브웨에 매료돼 이주
1955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김근욱(62) 자문관은 세 살 때 부모님을 따라 부산으로 이사했다. 부산서 초·중·고를 거쳐 동아대 법정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신동아그룹에 입사했지만, 2년 반 만에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김해와 산청에 플라스틱 골판지 제품을 만드는 공장을 차려 한때 500명이 넘는 종업원을 둘 정도로 성업을 이루다가 부도로 회사가 경매에 넘어가고 정리했다.
김 자문관은 사업실패 후 우여곡절을 겪고 1999년 초 머리나 식히고 오자는 생각으로 아프리카에 갔다. 그의 나이 마흔다섯 살 때다.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 한 달간 머물면서 '바로 여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 식민지배에서 1980년 독립한 짐바브웨는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었고, 영국인들이 은퇴 후 살 곳으로 1순위에 꼽을 만큼 자연환경에서부터 주거시설, 교육환경, 물가 등 모두 파라다이스처럼 보였다고 한다.
곧바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짐을 꾸려 다시 짐바브웨로 갔다. 물론 한국에서 사업에 실패한 후 활로를 모색하고 있던 중이어서 그곳에서 뭔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이것저것 현지 사정을 알아보니 봉제공장이 괜찮은 아이템같았다.
아프리카서도 사업실패 비용 톡톡히 치러
1999년 7월 한국에서 미싱 60대와 원단을 들여오고, 기술자 두 명도 초빙했다. 하라레 인근 공단에 봉제공장을 차렸으나 가동도 해보지 못하고 접었다. 다리를 놓아준 한국인 파트너가 자꾸 사기를 쳐서 '이건 안 되겠구나' 판단하고, 미련 없이 곧바로 정리했다.
2000년 5월이다. 한국에서 사업에 실패한 경험, 결단력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요즘은 덜하지만 당시만 해도 해외에선 동포들로부터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김자문관도 그 비용을 톡톡히 치렀다.
한국에서 양호교사로 있던 그의 아내가 명퇴를 하고, 어린 딸과 함께 하라레에 합류했다. 아내의 명퇴금으로 잡화점을 시작했다. 잡화점 운영과 함께 원단을 사서 남방을 만들어 현지인들에게 나눠주고 팔기도 했다. 짐바브웨 방송 출연자들 중 김 자문관 아내가 만든 옷을 입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김 자문관은 "집사람이 생활력도 강하고, 센스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까지 와서 잡화나 팔고 있는 것에 대한회의였다. 그러면서 서울 도곡동에 사무실을 얻어놓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오갔다.
아프리카에 뼈를 묻을 것이냐,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냐를 생각하는 장고의 시간이었다.
고생 끝에 가발 유통업 진출로 재기해 성공
그러다 2004년 2월 하라레로 들어가는 공항에서 서울행 리턴티켓을 찢어버렸다고 한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 여기서 끝장을 보자'라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의 나이 지천명인 쉰 살일 때다. 그리고는 아프리카 시장을 찬찬히 다시 살폈다. 가발과 유통구조가 취약하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프리카 여성들의 구매욕구 1위가 가발이다. 머리카락이 두피를 파고들어가는 데다 여성 본연의 아름다음을 추구하면서 생겨난 풍조다.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이어서 치장하는 가발을 주로 이용한다. 그래서 가발을 판매하는 곳이 많다. 하지만 김 자문관은 잡화점 등과 같이 다른 물건과 뒤섞여 판매하는 곳만 있지 전문점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는 가발공장을 운영하는 우리 동포들이 많아 물건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도 생각에 떠올랐다.
이에 착안해 운영하던 잡화점 두 곳의 잡화를 걷어내고, 한국 사람이 하던 다른 잡화점 한 곳까지 인수해 가발전문점 3개를 열었다. 가발공장이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잠비아를 보따리를 들고 오가며 7년간 매달리며 온갖 고생 끝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그는 현재 짐바브웨를 거점으로 인건비가 비교적 싼 잠비아에 공장을 두고, 말라위까지 세 나라에 걸쳐 수십 개의 가발전문판매장을 두고 있다.
현지 자원봉사·동포결집·모국 가교 역 앞장
아프리카 교민사회에서 성공한 기업인으로 불리는 김 자문관은 현지인들을 돕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동포들을 중심으로 설립한 짐바브웨 기아대책기구(ZFHI)의 가장 큰 후원자다. ZFHI의 '밥퍼봉사'에도 직접 참여한다. 자신은 불교도인데도 짐바브웨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개신교 선교사와 가톨릭 수녀들에게도 통 큰 기부를 통해 후원한다. 봉사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짐바브웨는 돈만 벌고 떠날 땅이 아니라 두 딸과 손주들이 살아가야 할 터전"이라며 ©그 땅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할 책무가 있다"는 말로 대신했다.
교민사회 관련 여러 직책을 맡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김 자문관은 동포들을 결집시키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현재 짐바브웨한인회 회장과 아프리카·중동한인총연합회 수석부회장, 아프리카한상회의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다,
서울시역도연맹 부회장과 ㈔재외동포연구원 이사, 재외동포재단자문위원 등으로도 활동하며 모국과 해외교민들의 가교 역할도 한다. 지난 2014년 8월 경상남도 해외통상자문관에 위촉돼 경남도와 짐바브웨 간 우호교류를 적극 돕고 있다.
경남도 우호교류·새마을운동 접목에 관심
"해외통상자문관들은 경남도의 해외사업에 코디네이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형식적이 아닌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자문관들을 연결고리로 해외교류와 시장개척이 더욱 활발하기를 바랍니다." 김 자문관은 짐바브웨에 새마을운동을 접목시키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경남도는 우호협력지역인 짐바브웨 중앙마쇼날랜드주의 우송가니마을에 경상남도 새마을시범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경남도가 자금을 지원하고, 현지 주민 스스로 완공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지난 5월에는 류순현 행정부지사가 참석한 가운데 새마을회관을 준공했다. 김 자문관은 "아프리카 오지에 새마을기가 펄럭이는 것을 보면 가슴 벅차다"며 "짐바브웨에 씨앗을 심는다는 생각으로 새마을사업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포화상태입니다. 젊은이들이 가능하면 해외로 많이 나가야 합니다. 아프리카는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입니다. 이미 시장을 장악한 중국·유럽자본과 싸우려 하지말고 틈새를 노려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발달된 농업기술과 새마을운동을 적극 수출해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됐을 때 2차로 기업이 진출하는 방법을 권합니다. 경상남도 새마을시범마을 건설도 그런 차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20년 가까이 살고 있는 김 자문관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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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해외통상자문관은
경남도의 해외마케팅 활동과 국제협력 지원을 위한 인적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운영한다. 시장개척과 경남관광 등 도의해외사업 관련 전반에 대한 정보수집과 홍보에도 도움을 준다. 해외 거주지역에서 영향력이 있고, 수출입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 중 재외공관장·교민회장 등의 추천을 받아 도지사가 위촉한다. 필요하면 추천 받지 않고 직접 위촉할 수도 있다. 현재 미주 10명, 아시아 20명, 호주 1명, 유럽 2명, 아프리카 2명 등 20개국에 35명이 위촉돼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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