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도 재울고성향인회장】 <경남공감 2015년 10월호>
"고향 사람 만나면 언제나 기분 좋고 즐겁다"
이영도(61) 재울고성향인회장을 만나러 울산광역시 남구 매암동 소재 동덕산업가스㈜를 찾았다. 이 회장이 고향을 떠나 역경을 딛고, 성공한 기업인으로 우뚝 선 현장이다. 태화강이 울산만과 만나는 지점이자 고래잡이 전진기지로 유명했던 장생포 해안을 돌아 도착한 동덕산업가스㈜에 들어서자 압축가스를 운반하는 탱크로리가 줄지어 서 있어 대한민국 최대의 산업도시 울산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 글·사진 최춘환 편집장
기술력 바탕 차세대 에너지사업 진출
동덕산업가스㈜는 탄산가스와 질소, 아르곤, 일반산업가스, 산소 등 산업용 압축가스를 제조해 탱크로리로 전국에 공급하는 회사다. 지난해 결산 기준 총자산 317억 원에 매출액 220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직원 50명에 탱크로리가 50대다. 이영도 회장에 따르면 동종 업계 전국 10위권이라고 한다.
지난 2009년 11월 민간기업 최초로 수소연료전지자동차용 수소스테이션 350*바를 완공하고, 2011년 2월 울산시와 수소연료전지자동차 운행협약을 맺어 실증차량 14대로 1단계 시범운영을 완료했다. 이어 2013년 1월 수소스테이션 700바를 완공해 승용차와 버스 등 실증차량 24대로 2단계 시범운영 중이다. 이 같이 동덕산업가스는 가스제조·충전 기술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제 차세대 에너지사업의 선두주자로 나아가고 있다.
울산에서 성공한 기업인으로 자리 잡은 이영도 회장의 인생 이야기도 듣는 이의 마음을 짠하게 한다. 1954년 고성군 마암면 삼락리 곤기마을에서 3남2녀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삼락초등학교와 고성중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기 위해 곧바로 부산으로 간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고교 진학 포기
이 회장은 어릴 때 시골에서 공부를 제법 잘한 편이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당시 최고 인기 자습서인 '동아전과' 한 권도 사보지 못할 정도였지만, 고성중학교 입학 때 300명 중 13등이었다.
대학원까지 공부하는 게 소원이었던 소년 이영도가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데는 그 시절 대부분 시골 빈농의 자녀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이다. 늦은 봄이면 먹을 게 없어 어머니가 채 익지도 않은 보리이삭을 꺾어와 절구통에 찧고 채에 걸러서 끓여주는 죽을 먹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읍내에 있는 중학교까지 왕복 15㎞ 정도 되는 길을 차비가 없어 3년간 걸어 다녔다. 이 회장은 당시를 이야기하면서 "비포장도로를 고르는 차가 지나가면 가끔 얻어 타기도 했는데, 내리면 온 몸이 흙으로 범벅이 돼 마치 황토밭에 구른 아이 같았다"며 웃음을 지었다.
명절 때면 아버지가 장에서 진 외상값을 받으러 사람들이 오곤 했는데, 어머니가 보리쌀 몇 되를 건네면 면박을 주면서 돌아가는 것을 본 적도 많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이 회장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논 1500평을 사드렸다고 한다.
공장에서 3년간 돈 벌고 고교 입학
중학교 졸업 직후인 1970년 3월 부산으로 간 소년 이영도는 먼 친척 작은 할아버지의 사법서사(현 법무사) 사무실에서 두 달 정도 심부름하며 사환으로 일했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선 공장에라도 취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취직한 곳이 기름재생을 주 업종으로 한 공장이다. 그곳에서 아세틸렌가스도 제조한 게 이 회장이 가스업계에서 성공하는 계기가 된다.
2년간 그곳에서 근무한 그는 울산의 가스제조 회사로 옮겼다. 아세틸렌 기술자로 인정받아 요즘으로 치면 스카우트된 셈이다. 그는 "순전히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회사를 옮겼다"고 말했다. 그 전 회사에서 월급을 1500원 받았는데, 당시 아세틸렌가스 분야 기술자가 거의 없을 때여서인지 10배를 준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에 빨리 가야한다는 생각에 회사 안 창고에서 먹고 자며 24시간을 일했다. 월급 1만5000원에 야근수당까지 붙으면 많을 땐 한 달에 4만 원 정도를 받기도 했다. 부산에서 2년, 울산에서 1년 그렇게 3년간 열심히 일한 그는 과감하게 직장을 그만둔다. 돈을 벌고 나면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실행하기 위해서다. 뒤늦게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두 번이나 전학을 다닌 끝에 졸업했다.
시험지 배달하며 생활비·학비 조달
만학도인 그는 학교에 다니면서도 신문배달과 요즘으로 치면 학습지라고 할 수 있는 시험지 배달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벌어놓은 돈으로는 생활비와 학비를 조달하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그때를 회고하며 공부보다 고생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당시는 요즘 같이 학습지가 일반화되기 전이라 시험지를 구독하는 집이 전포동 3곳, 거제동 2곳 등으로 띄엄띄엄 있어 부산 서면 조방 앞에서 동래 온천2동까지 왕복 20㎞ 가까이 되는 거리를 걸어 다니며 배달했다. 돌아올 때도 걸어오는 게 다반사였다. 돈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다.
부암동에 살 당시 가끔 동네 분식집에서 칼국수를 사먹었는데, 한 그릇에 10원인 보통보다 5원이 비싼 곱빼기를 사 먹지 못해 항상 모자랐다. 가끔 주인아주머니가 남는 칼국수를 주면 배를 채우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3년 늦은 나이에 고교를 졸업하고, 76년 11월 강원도 철원 포병부대에 입대한 이 회장은 79년 9월 만기 제대하고 울산으로 다시 왔다. 가스회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주임, 대리, 계장, 과장을 거쳐 부사장까지 올랐다. 이 회장은 그곳에서 18년 정도 근무하고 96년 7월 퇴사했다.
133만 원 손에 쥐고 96년 사업 시작
곧바로 그해 9월 울산시 북구 정자동에 땅 58평을 임대해 가스판매소인 동덕산업가스를 설립했다. 창업자본금이라고 해봐야 손에 쥔 133만 원이 전부였다. 전세금이 없어 월세 45만 원에 땅을 빌렸다.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3000만 원짜리 계에 들어 1번으로 돈을 탔다. 그 돈으로 산소가스병(실린더) 50개를 사서 사업을 본격 시작했다.
정자동에 가스판매소를 차린 것도 돈이 없어서였다. 당시 압축산소가스 한 병에 6000원이었는데 횟집과 축양장에 공급하면 현금이 들어오니 바닷가에 판매소를 차릴 수밖에 없었다. 2년짜리 계가 끝나니 불입한 돈이 6000만 원이었다.
그러다 탄산가스 운반용 10t짜리 탱크로리 한 대를 사서 당시 유명했던 한 화학회사의 대리점을 개설하고, 탄산가스를 공급하는 판매사업을 시작하면서 이 회장은 사업 기반을 잡게 된다. 대리점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시 양산의 한 식품가공공장에 탄산가스를 공급하던 본사가 납품권을 이 회장에게 넘겨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공장의 탄산가스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 회장은 "그때 빚도 갚고 돈도 많이 벌었다"고 했다.
창업 5년만에 전국 규모 회사로 성장
동덕산업가스는 창업 후 5년 만에 울산은 물론, 부산과 대구, 경기 등 전국에 산업용 가스를 공급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사업장인 울산광역시 남구 매암동에 3000여㎡에 달하는 특수가스제조공장을 건립하고, 현재 일반고압가스 충전·제조업에서 전국 10위권에 들 정도다. 이 같은 성장에는 평생 가스업계에서 다져온 이 회장의 기술력과 성실성, 신용이 뒷받침하고 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이 회장은 뜻한 바가 있어 2003년 초고순도 수소와 아세틸렌을 제조하는 SDG㈜를 설립하고, 초고순도 아세틸렌가스를 SK에서 파이프라인으로 공장까지 연결해 전국에 공급함으로써 국가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대기와 수질오염의 주범인 카바이드 사용량을 크게 줄여 환경오염원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킨 일대 혁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5년엔 외항강으로 폐수가 흘러들어 당국의 골칫거리였던 울산광역시 남구 성암동의 폐기물매립장을 매입하고, 2006년에는 JND㈜를 설립해 토목과 건설업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이 회장은 매립장 매입과 공장부지 조성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SDG를 미련 없이 매각했다. 2007년 11월 말끔히 정비된 이 땅은 지금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대기업에 공장부지로 임대하고 있다.
"준공 앞둔 고성공장 지역산업 기여할것"
이 회장이 고성읍 율대리에 건립하는 국내 최대 일반고압가스 제조·충전공장이 10월 중 준공된다. 이 공장이 가동되면 거제·통영은 물론 국가산단으로 지정된 사천·진주의 항공산업체와 멀리 창원과 전남 여천공단까지 산업가스를 공급하는 체제를 갖추게 된다.
이 회장은 "경남도가 역점 추진하는 서부권 개발과 그에 따라 조성되는 산업단지 입주기업들의 산업가스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된다"며 "규모가 큰 산업가스 공장이 고성에서 가동되면 지역 산업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향과 고향사람에 대한 이 회장의 애정은 남다르다. 군 복무 시절에도 고향 후배가 오면 항상 챙겼다고 한다. 지난 1982년부터 재울고성향인회 총무를 시작으로 감사와 부회장을 맡으며 봉사했다. 총무를 맡았을 땐 연말 '고성인의 밤' 행사에 향우 200여명을 모아 고성향인회 활성화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3년엔 재울산 서부경남 출신 기업인을 중심으로 3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친목모임 '*에나회' 의 회장도 지냈다. 고향에 대해 각별하게 생각하는 연유를 묻자 "고향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기분 좋고 즐겁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이 회장은 이제 고향과 고향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고향의 어려운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과 취업을 지원하는 방법을 생각한다. 이를 통해 출향인들의 참여의식도 고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이 회장의 생각이다.
지난 2007년 대학을 졸업하고, 2010년 울산대에서 경영학석사 학위를 받아 대학원까지 공부하겠다던 어릴 적 꿈을 늦게나마 이룬 이 회장은 경남도의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에도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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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Bar) 압력을 나타내는 단위. 기상에서 기압을 나타내는 단위인 1밀리바(mb)는 1/1000바에 해당한다.
*에나 진주를 위시한 서부경남 일부 지역의 사투리로 '참', '진짜'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주로 '참말이야?', '진짜야?'라는 뜻을 가진 물음 형식의 '에나가?', '에나로?'라고 쓰인다.
경남미래 50년 사업 등 공감시간 가져 재울산 경남향우회 초청 도정설명회 경남도는 지난 9월 3일 재울산 경남향우회 시·군회장단 16명을 초청해 도정설명회를 갖고 경남미래 50년 사업 등 역점 시책사업에 대한 공감의 시간을 가졌다. 홍준표 도지사는 이날 도정회의실에서 출향인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도의 역점사업에 대한 설명과 함께 "도가 운영하는 SNS 회원가입, 지역신문 구독운동 등 고향소식 알기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참석 출향인들은 재경기숙사 건립, 합천 양전산업단지 조성, 함양~울산간 고속도로 건설, 서부청사 개청 추진사항 등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이영도 재울고성향인회 회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내 고향 경남의 발전상을 이해하고, 경남인으로서 자긍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며 "고향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겠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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