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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醫師)이자 의사(義士) 이태준 선생

고룡이 2021. 11. 13. 22:00

의사(醫師)이자 의사(義士) 이태준 선생

몽골서 붓다의사 신의로 불린 항일운동가

짧은 생애 큰 족적 남기고 한-몽골 이어준다

 

몽골인들은 한국을 솔롱고스(무지개 뜨는 나라)라고 부른다. 몽골은 고려 때 우리의 침략국이었고, 이후 오랫동안 우리나라와 교류가 별로 없었으나 왠지 친근한 나라다. 다문화사회인 요즘은 우리 아이들의 외갓집 나라이기도 하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런 몽골과 우리나라를 이어준 사람이 있다. 우리고장 출신 의사(醫師)이자 항일독립운동을 한 의사(義士)인 이태준(李泰俊) 선생(1883~1921)이다. 호는 대암(大岩)이다. 선생은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몽골의 슈바이처라 불릴 만큼 항일독립운동의 차원을 넘어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펼친 정신적.실천적 운동가이기도 하다.

몽골 울란바토르의 이태준 기념공원과 이태준 선생

1883년 함안군 군북면서 태어나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시에 6500여㎡ 규모의 잘 정비된 공원이 있다. 입구에는 한국어로 이태준 기념공원이라 크게 써져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낯선 몽골 땅에서 한국인을 기리는 공원을 발견하고 대부분 의외라는 생각을 갖는다. 이렇듯 이태준 선생은 그 동안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선생의 생애와 업적에 관해 뒤늦게 알게 된 사람들은 이렇게 훌륭하신 분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하며 몹시 부끄러워한다. 그만큼 그의 생애는 항일투쟁정신과 국적을 초월하는 숭고한 인간사랑 정신으로 점철되어 있다.

선생은 1883년 11월 21일 함안군 군북면에서 태어났다. 1907년 스물네 살 되던 해 세브란스의학교(현 연세대 의과대학)에 입학해 1911년 제2회로 졸업했다. 당시 선생은 비밀 항일결사조직인 신민회의 산하 단체로서 안창호 선생이 만든 청년학우회에 가입해 김필순, 주현칙과 함께 독립운동을 펼쳤다.

 

몽골서 의사로 이름 떨치며 비밀 항일운동

그리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 중 중국에서 일어난 신해혁명에 고무 받아 1912년 중국으로 건너간 선생은 항일운동과 의원 일을 병행했다. 1914년에는 나중에 처사촌이 된 애국지사 김규식 선생의 권유로 몽골의 수도 후레(현 울란바토르)로 가서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개설했다. 그때부터 선생은 몽골에서 의사이자 의사로서의 생애를 엮어간다,

당시 서른한 살인 선생의 동의의국은 사실 병원이자 항일 애국지사들의 활동과 연락을 위한 비밀기지였다. 그는 당시 몽골 사람의 70%가 넘게 고통 받던 매독을 퇴치하면서 붓다의사라는 칭송을 받게 된다. 몽골인들에게 그는 신의(神醫)였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서른네 살 때 몽골 마지막 왕 보그드칸(Bogd Kahn)의 어의가 되어 의사로서 이름을 떨친다. 동시에 그는 국권회복을 향한 열망을 놓지 않았다. 어의가 된 이후에도 한인사회당 지하당원 활동, 상해 임시정부 군의관 간부 직책, 독립운동가 김규식에게 거액의 활동비 지원, 의열단 활동 등 항일독립과 관련 이전보다 더욱 활발한 운동을 펼쳤다.

 

일본군 섞인 러시아 운게른 부대에 피살

그러던 중 뜻하지 않던 일로 선생은 목숨을 잃게 된다. 1921년 후레시를 점령한 러시아 백위군 운게른 부대에 의해 피살된 것이다. 운게른 부대에 일본군이 섞여있어 몽골 수도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펼친 선생을 제거하기로 한 일본군의 의도가 숨어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선생의 나이는 서른여덟에 불과했다.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독립운동가이자 의사로서 몽골인의 뇌리에 우리나라를 뚜렷하게 남겼다.

우리정부는 이태준 선생의 업적을 기려 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이태준 선생이 바친 숭고한 독립정신과 보편적 인간사랑 정신에 비하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더욱이 선생이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 한몽수교 이후다. 항일독립운동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선생은 한몽수교 이후 한국과 몽골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의과대학과 병원들은 몽골과 의료교류.의료봉사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면서 몽골에 한국을 알리고 있다. 몽골 의학도가 국내 대학병원에서 배출되기도 한다. 함안군은 울란바토르시 항올구와 자매결연을 맺고 몽골에 선진 시설원예기술을 전해주는 등 상호우호교류를 펼치고 있다.

 

<울란바토르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시 항올구 보그드칸산 남쪽 기슭 자이승 승전탑 아래에 조그만 공원이 있다. 이태준 선생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재몽골한인회와 연세의료원이 주축이 되어 2000년 건립한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이다. 이곳은 몽골 정부가 조성한 이태준 선생의 묘역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자이승 승전탑은 몽골이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성지다. 몽골 정부가 이런 곳에 이태준 선생의 묘역을 조성했으니 최고의 예우다. 기념공원은 한국과 몽골의 상호우호협력 증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몽골 여행 필수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창하 이태준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선생을 기리기 위해 함안군 군북면의 선생 생가를 복원하고 국내에도 기념관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춘환 편집국장.이한나 편집위원 사진 이태준기념사업회 제공

경남공감 2014년 03월호[Vol.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