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찬 전 창녕군 부군수】 <경남공감 2015년 5월호>
도시락배달 자원봉사 퇴직공무원
"공직에 있을 때 못다 한 숙제한다"
정년퇴임한 전직 공직자가 도시락배달 자원봉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창원시 의창구 동읍 석산리 소재 동진노인복지센터를 찾았다. 이 센터의 강외숙 이사장과 2층 사무실에서 이야기 나누고 있던 중 약속한 오전 10시가 되자 중년 신사 한 분이 들어섰다. 허병찬(62) 전 창녕군 부군수다.
/ 글·사진 최춘환 편집장
허병찬 전 부군수는 인사를 나누자마자 "도시락 담는 것을 도와야 한다"며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에는 밥과 반찬을 담은 그릇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도시락에 그릇과 후식용 요구르트를 담는 허 전 부군수의 손놀림이 익숙해 보인다. 마침 이날 자원봉사 온 경남장애인체육회 직원들도 일손을 보탰다.
도시락 준비가 끝나자 센터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은 도시락을 구역별로 상자에 나눠 담고, 차에 실었다. 허 전 부군수가 이날 배달할 곳은 동읍 지역. 대상 독거노인의 집은 15곳이지만, 자연부락이 10여 곳이라 점심 때 전에 배달을 마치려면 서둘러야 한다.
아들 나이의 사회복지사와 함께 팀을 이룬 그는 빠진 게 없는지 확인한 후 차에 올랐다. 허 전 부군수가 운전대를 잡고 센터를 출발한 시간은 오전 10시 30분.
처음 배달할 곳은 집 앞까지 차가 들어가지 못한다. 사회복지사가 내려 도시락을 가지고 간 사이 허 전 부군수는 출발하기 좋게 차를 돌려 기다린다. 잠시 후 돌아온 사회복지사를 태우고 출발한 차는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두 번째 도착한 동네에서는 사회복지사와 함께 갔으나 어르신이 출타하고 집에 없었다. 문을 열고 도시락을 내려놓은 후 문 앞 의자 위에 놓인 빈 도시락을 회수해 차로 돌아왔다.
몇 집을 거쳐 도착한 한 동네에서는 외곽 단감과수원 사이 비탈길로 차를 몰았다. 과수원 한쪽에 놓여있는 컨테이너 옆에 차를 세운 허 전 부군수가 사회복지사와 함께 컨테이너집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인기척이 난다.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 한 분이 살고 있었다.
가져간 도시락과 빈 도시락을 교환하면서 안을 둘러보고 안부를 묻는다. 밥 잘 챙겨 드시라고 당부하면서 아프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센터로 연락하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좁은 길이라 차가 앞뒤로 여러 번 오간 후 겨우 돌려 출발했다. 좁은 골목에서 차를 돌리려다 긁는 때도 가끔 있다고 한다.
다음에 들른 집에서는 할머니 한 분이 문 앞에 나와 반갑게 맞는다. 잠시 서서 말벗이 되어준다. 허 전 부군수는 "도시락배달을 가면 이렇게 나와서 기다리는 분이 있다"며 "어쩌면 배고픔보다 외로움이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도시락을 모두 배달하고 센터에 돌아온 시간은 낮 12시쯤. 차량 이동거리 35㎞에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북면이나 소답동 쪽으로 배달 나가는 날이면 이동거리가 50㎞를 넘고, 시간도 2시간 넘게 걸린다고 한다. 이날은 봄철인데다 날씨도 좋아 배달하기에 편한 날이다. 하지만 비오는 날이나 한겨울, 한여름엔 힘들다.
허병찬 전 부군수는 1년째 지금 살고 있는 밀양시 산내면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거리인 동진노인복지센터로 매주 금요일 오간다. 그는 공직에 있을 때부터 퇴직 후 양지 바른 곳에 집짓고 살면서 봉사하며 노후를 보내는 게 꿈이었다.
창녕군 이방면에서 나고 자란 허 전 부군수가 공직에 발을 처음 들인 것은 1975년. 그리고 1978년 행정직 '4급을'(현 7급) 공개경쟁시험을 치러 지방공무원을 다시 시작했다. 창녕군에서 20여년 간 근무하고, 1997년 경남도에 전입했다.
경남도에서 노인복지담당, 체육행정담당을 맡은 것 외에 주로 경제통상, 산업부서를 거쳤다. 기업지원과장과 경제기업정책과장을 거쳐 창녕군 부군수를 끝으로 2012년 6월 정년퇴직했다. 그리고 선대의 고향이자 공직에 있을 때 등산을 다니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던 곳으로 귀촌했다.
퇴직 후 몇 달간 정리 기간을 거치고 공직에 있을 때 생각한 일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실천하고 있다. 도시락배달 자원봉사도 그 중의 하나다. 동진노인복지센터는 경남도 노인복지담당을 맡았을 때 인연을 맺어 10여년 가까이 후원해왔다. 퇴직 후 한 번씩 띄엄띄엄 노력봉사를 하다 지난해부터 매주 1회 도시락배달 봉사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시 창작·영어공부, 국선도 수련에도 푹 빠졌다. 허 전 부군수는 "모두 공직에 있을때 하지 못한 숙제를 하는것"이라고 말했다.
'사람과 사람 >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격포 서울대 학생 (0) | 2017.10.19 |
---|---|
이창희 진주시장 (0) | 2017.10.19 |
이정숙 경남과총 회장 (0) | 2017.10.19 |
김진수 경남서남권발전협의회장 (0) | 2017.10.19 |
추호진 정옥다슬기 대표 (0) | 2017.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