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고 싶다】 통영 용초도와 추봉도
한산도 앞바다 평화로운 섬
한국전쟁 아픈 역사 간직
두 섬 공산포로 1만7000여명 수용
하루 만에 섬 두 곳을 둘러봐야 하니 마음이 급하다. 통영시 서호동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한산도로 가는 카페리에 차를 싣고 올랐다. 한산면의 부속 유인도 용초와 추봉 두 섬을 가는 길이다.
용초도는 한산도와 가장 짧은 직선거리가 1㎞ 조금 못되지만 교통이 불편하다. 정기선이라고는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촬영지로 유명한 장사도로 오가는 배가 하루 두 번 들르는 게 고작이다. 그래서 용초도 주민들은 어선을 이용해 한산면 소재지인 한산도 남쪽 끝 진두마을로 건너가 북쪽 제승당선착장을 거쳐 통영 뭍을 오가기도 한다. 반면, 추봉도는 진두마을 어귀와 연도교로 연결돼 접근하기 쉽다.
이렇게 한 섬은 큰 섬과 연도교로 연결됐고, 한 섬은 아직 바다가 가로놓여있지만 한국전쟁 당시 1952년 5월부터 두 섬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돼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수용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포로수용소 하면 거제를 떠올린다. 하지만 거제에서 다루기 힘든 포악한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해 두 섬에 수용소를 설치했다고 한다.
작은 섬 용초도와 추봉도에 각각 8000여 명과 9000여명을 수용했다고 하니 상상하기 어렵다. 두 섬 주민들은 공산포로, 이들을 관리한 유엔군과 국군에 섬을 내주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한참 지난 1956년 3월에야 돌아와 폐허가 된 터전을 다시 일구며 질곡의 삶을 살아온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 용초도
큰 파도가 바닷돌 사이를 흐르며 우렛소리 연출
용초마을 선착장 옆 언덕배기에 자리한 마을회관에서 추갑숙 이장의 설명을 듣고, 마을 뒷산에 올랐다.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 터부터 둘러보기 위해서다.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를 사이에 두고 그물로 둘러친 조그만 밭이 띄엄띄엄 있는 것을 제외하곤 한여름의 싱그러움을 내뿜는 나무와 풀이 전부다. 여느 시골 뒷동산과 다를 바 없는 분위기다. 시선을 멀리하면 사방으로 탁 트인 바다와 그 속에 몸을 담근 크고 작은 섬들이 보인다. 남서쪽 건너편에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섬이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비진도다.
음매~~ 염소 울음소리가 들린다. 풀밭을 헤치며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니 돌과 시멘트로 둥글게 쌓은 담이 풀과 나무 사이로 약간 보인다. 포로수용소 우물로 사용한 흔적이다. 우물 주변 넓은 비탈을 중심으로 포로수용소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용초도의 다른 마을인 호두마을은 용초마을에서 해안 길로 연결돼 있다. 호두마을에 다다르니 마을 앞 선착장 방파제 입구 양쪽에 서 있는 빨간 색과 하얀 색의 등대가 인상적이다. 마을의 집들은 대체로 깔끔하게 단장된 느낌이나 골목엔 시멘트 담장을 뒤덮은 담쟁이넝쿨이 시골분위기를 연출한다.
추갑숙 이장의 설명을 따라 호두마을 뒤로 향했다. 마을 뒤편 전체를 막고 있는 콘크리트 방죽 가까이 가니 잔잔하게 흐르는 우렛소리가 들린다. 마치 천둥이 치고 난 뒤 길게 이어지는 소리 같다. 청명한 날씨라 고개를 갸웃하며 방죽을 넘어서니 크고 작은 바닷돌이 둥글게 펼쳐진 해안이다. 파도가 밀려와 바닷돌 사이를 흐르면서 내는 소리였다.
방죽에서 해안에 접근하는 출입구에 너울성 파도를 주의하라는 안내판이 있을 정도로 큰 파도가 치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먼 바다로 탁 트여 있다. 용초도의 탐방 포인트는 호두마을 뒤 해안이 으뜸인 것 같다. 용초도 주변 바다는 건강한 해양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어 해초들이 무리지어 자란다고 한다. 미역 주산지인 것도 이런 바다환경이 주는 선물이다.
⚫ 추봉도
곳곳 낚시 포인트, 길게 펼쳐진 몽돌해안 일품
한산도 진두마을에서 추봉교를 건너자 추봉도 초입에 진두마을을 바라보고 조성된 쉼터에 다리 개통을 기념해 세운 듯한 시비의 글귀가 눈길을 끈다. 추봉도의 모습과 역사를 압축한 글이라 읽는 것만으로도 추봉도를 탐방한 느낌이다.
대봉산 망산 정기 골마다 서린 곳
동반령 굽이돌아 터울잡고 바다품은
벌바우 추원 예골에 고부랑개의 좋다
아는가 *기해동정己亥東征 추암도의 숨결을
전설가득 바위등걸 동백꽃 정도 붉고
와다라臥達里 암자 가는 길 솔바람도 그만이네
육이오 동족상잔 한 서린 포로수용소
삶의 터전 다시 일구랴 허리띠 졸라맸지
그 아픔 세월에 묻혀 흔적조차 아련하다
뭍 향한 염원 모아 큰 다리 놓았으니
배 타고 떠난 임들 차를 몰고 오겠구나
은파에 몸단장하고 꿈을 그리는 섬이여
이렇듯 추봉도는 남쪽바다의 작은 섬이지만 한반도 역사 흐름의 중요지점에 있었다. 추봉도의 포로수용소는 동쪽 대봉산 아래 추원마을에서 예곡마을로 이어지는 허리 부분과 서쪽 예곡망산 아래 예곡마을 일대에 걸쳐 있었다.
추봉도 포로수용소 흔적도 찾기가 쉽지 않다. 다만 예곡마을회관 골목안쪽 언덕배기의 빈집 담장에 포로수용소 정문흔적이 남아있지만 이마저 얼핏 보면 담장의 일부 같다. 예곡마을 뒤 능선위에 올라서니 추봉초등학교(폐교)를 가운데에 두고 동서 양쪽으로 펼쳐진 넓은 땅이 포로수용소가 자리하기에 충분했을 것 같다. 63년 전 여름 이념의 대척점에서 소용돌이쳤던 이곳에 옥수수와 참깨 등 여름농작물이 뙤약볕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
추봉도 동쪽 끝에 위치한 곡룡포는 거제시 동부면 덕원마을, 남부면 쌍근마을과 가까워 낚시꾼들은 주로 이곳에서 낚싯배를 이용한다. 고부랑개라고도 하는 곡룡포 앞바다의 가마여와 섬 주변에 흩어져 있는 마당여, 망싱이여, 수무여, 약개여, 작은새여 등 갯바위들이 낚시꾼들을 불러들인다.
추봉도를 찾는다면 봉암몽돌해수욕장을 빠뜨릴 수 없다. 대봉산자락 남쪽 만곡해안을 따라 1㎞ 정도 펼쳐져 시원하게 뻗은 이 해변은 까만 몽돌 사이사이에 박힌 형형색색의 돌들이 아름답다. 건너편 용초도와 죽도가 방파제 역할을 해서인지 파도도 잔잔하다. 너울성 파도가 큰 바닷돌에 부딪치는 용초도 호두마을 뒤편 해안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소나무가 울창한 해변을 따라 300여 m의 산책로가 있어 해수욕과 바다산책을 함께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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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동정 1519년(己亥) 이종무 장군이 군선 227척과 군사 1만7000여 명을 이끌고 대마도 정벌에 나선 군사작전명. 이때 추봉도(당시 지명 추암도)는 정벌에 나선 군사들의 중간 기착지였다고 함.
〔경남공감〕 2015년 08월호[Vol.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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