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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제경 예은칫과 대표원장

고룡이 2017. 10. 19. 09:35

【성제경 예은치과 대표원장】 <경남공감 2013년 8월호>



‘휠체어 탄 치과의사’에서 ‘지역일꾼’으로

“진정한 복지는 성장 위한 굴림판이어야”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안될 이유가 있으면 반드시 될 이유도 있다" '휠체어 탄 치과의사'로 잘 알려진 성제경 예은치과 대표원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면서도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성 원장의 일상을 보기위해 오후 늦게 그의 일터를 찾았다. 병원은 낮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월·수·금 등 1주일에 3일을 밤 9시까지 진료한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경남지역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는 성 원장은 하동군협의회 제16기 출범식에 참석한 이날도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진료에 참여하고 있었다. 전동휠체어를 능숙하게 운전하면서 분주히 진료에 임하는 그를 방해하지 않도록 틈틈이 대화하다보니 두 시간 넘게 이어졌다.

/ 글·사진 최춘환 편집장


전도양양한 젊은 의사 불행 닥쳐

성 원장은 공부도 꽤 잘한데다 치과의사였던 아버지가 항상 "너는 치과의사로 태어났다"는 말에 영향 받아 치과대학에 진학한다. 대학 졸업 후 1983년 대구에서 치과병원을 개업했으나 보증을 잘못 서 자신의 재산으로 모두 청산하고 빈털터리가 된다. 서른다섯 살인 1990년의 일이다.

부인과 슬하의 어린 남매 등 네 가족이 창원으로 이사했다. 월세 옥탑방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고, 대전의 한 병원 과장으로 일자리를 찾았다. 이어 산청에서 개인병원을 개업해 1년여 운영했다. 환자가 줄을 설 정도로 잘됐으나 변화를 위해 부산의 한 병원에 취업했다.

그리고 1994년 창원에 치과를 열고 다시 개업의사의 길을 걷는다. 그때까지 만해도 전도양양한 젊은 의사였다. 그러던 그에게 한순간에 불행이 닥쳤다. 마흔한 살이던 19966월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입고 2년여 병원생활 끝에 1급 지체장애인이 된 것이다.


교통사고 부상 딛고 재기 성공

이렇듯 성 원장의 장애는 선천적이 아니다. 교통사고 전까지 그는 패러글라이딩과 스킨스쿠버를 즐길 만큼 활동적이었다. 사고의 부상은 말 그대로 처참했다. 복합장기손상에다 양팔과 쇄골을 비롯해 갈비뼈 13개가 부러졌다. 오른쪽 다리 골절상에다 척추마저 다쳐 의사가 치료를 하더라도 앉아있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36회에 걸쳐 크고 작은 수술을 받는 동안 전신마취만 18번에 수술 중 네 차례나 뇌파가 정지되기도 했다. 중환자실에서 84일간 사투를 벌인 끝에 사선을 넘었다. "숨이 붙어있는 것은 할 일이 남았다는 하늘의 소명"이라 생각한 그는 이를 악물고 치료와 재활에 매달렸다.

휠체어 신세를 질 수밖에 없는 몸이지만, 퇴원하자 곧바로 치과의사로 재기에 나섰다. 당시에는 가족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왔다고 한다. 우선 의학서적을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휠체어를 타고 출근해 환자를 돌보기 시작했다. 처음 3년 정도는 집과 병원에 집중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가 당시 교회를 찾는 것도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일상이었다.


"책임과 의무 다하는 게 진정한 삶"

병원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장애인과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처음에는 자신의 능력이 닿는 대로 도움을 주는데 그쳤다. 하지만 개인적인 후원이나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변화와 장애인기본권과 같은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자연스럽게 장애인단체와 복지단체 등의 책임자를 맡게 된다. 지자체와 정당 등의 장애인기구를 통한 정책수립에도 관여한다. "진정한 복지는 다음 성장을 위한 굴림판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복지철학이다.

페이스북 글에서 보듯 긍정적인 생각과 적극적인 자세에서 어느 정도 알 수 있었지만, 불편한 몸으로 장애인단체를 비롯해 복지·문화·환경·통일 등 지역의 각종 단체를 이끄는 힘의 원천이 궁금했다. 그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게 진정한 삶"이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장애인이 국방의 의무는 못하더라도 근로·납세·교육의 의무는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만드는 사회가 진정한 공정사회"라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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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기 민주평통 경남부의장 맡아


성제경 원장은

1956년 창녕군 대지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대구로 가 초·중·고교를 그곳에서 다녔다. 조선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치과의사의 길을 걷는다. 개업과 취업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가정과 자신에 충실한 의사였다.

평범한 삶을 살던 그는 마흔 한 살인 1996년 생각지 못한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 된다. 하지만 이때부터 '인간 성제경'의 진가가 나타난다. 고난과 장애를 딛고 치과의사로 재기한 그는 자신과 가족의 편안한 삶에 그치지 않고 '희망전도사'로 변신한다.

경남복지포럼, 사회복지법인 나눔 후원회장, 경남CBS합창단 단장, 미래정책연구원 대표이사장, (주)휴먼바이오셀 대표이사, 낙동강 생태복원 네트워크 상임대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창원시협의회장 등 장애인·복지·종교·문화·환경·통일 등 각종 단체를 이끌면서 '지역의 일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7월부터 헌법상 대통령자문기구인 민주평통 경남지역회의 제16기 부의장을 맡아 18개 시·군협의회 출범 및 통일운동에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