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인물

심기수 재일 교토도민회장

고룡이 2017. 10. 19. 10:35

심기수 교토도민회장   <경남공감 2016년 5월호>

재일경남도민회 향토식수단 이끌고 17년째 고향 찾은 구순의 재일교포


/글 최춘환 편집장



지난 4월 4일 밤 창원 풀만호텔에서 열린 재일경남도민회 제40회 향토식수단 환영행사와 다음날 산청군 단성면 묵곡생태숲에서 진행된 식수행사에서 만난 교토(京都) 도민회 심기수 회장. 1928년생이니 내년이면 구순이다. 일흔 살 이상이 절반을 넘는 289명의 올해 향토식수단 가운데서도 고령자에 속한다.

더욱이 향토식수단을 이끌고 온 9개 지역 재일도민회장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30년 전부터 도민회 활동을 했다는 심 회장은 1999년 교토도민회장을 맡고부터 17년째 향토식수행사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올해도 부인 주만수(86)씨와 함께 왔다.

심 회장은 교토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그곳에서만 살고 있다. 심 회장이 뱃속에 있을 때 어머니가 먼저 간 아버지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갔다. 15살 때 연탄가스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심 회장의 누나가 세 살때쯤 엄마에게 업혀서 갔다고 한다.


심 회장 아버지의 고향은 진주시 이반성면 평촌리다. 하지만 심 회장의 본적(등록기준지)은 마산이다. 8·15해방과 함께 부모님이 동생 다섯을 데리고 당숙(아버지의 사촌)이 있던 마산에 자리 잡으면서 심 회장의 본적도 마산으로 했다.

온가족이 귀국했으나 심 회장만 일본에 남았다. 야간중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어서 혼자 남은 게 지금까지 일본에 뿌리내리고 살게 된 계기다.

지금은 2남 2녀에 친손자녀 9명과 외손자녀 6명 등 대가족을 이루었고, 사업가로 어느 정도 성공해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만, 혼자 남겨진 초창기엔 외로움과 서러움을 많이 겪었다. 친구 집과 사촌누나 집에 얹혀 살면서 신문배달 등을 통해 생활비를 벌었다. 그러다 보니 야간학교지만 결석이 잦아 3학년 진급도 못하고 중도에 그만두게 됐다. 공부하기 위해 혼자 남았는데, 그것도 마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스무 살 때 재일교포 2세와 결혼했다. 지금까지 70년간 해로하고 있는 아내다. 처가 역시 고향이 진주다. 심 회장은 아내의 내조 덕분에 일본에서 재산을 일구고, 지금까지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참 고마운 사람"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심 회장은 결혼할 시기쯤 기모노를 만드는 사촌자형의 옷가게에서 일했다. 아내와 함께 2층에 전세를 살다가 열심히 돈을 모으고, 약간의 돈을 빌려 결혼 5년 만에 집을 샀다. 그 집을 35년 전에 새로 잘 지어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결혼 후 세탁소를 운영하고, 다방과 식당도 운영하는 등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리고 38살 때인 50여 년 전 지금의 경제기반이 된 회사를 샀다. 분뇨수거차와 쓰레기차를 운행하는 회사로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환경 관련 회사다.

회사구입 자금은 당시 2800만엔이라는 큰돈이었다. 그때까지 모은 돈과 집을 잡혀 빌린 돈으로 마련했다. 배수진을 치고 시작해서인지 교토시의 분뇨와 쓰레기 수거·처리를 맡아 제법 사업이 잘 되었다. 그러면서 정화조와 오수조 유지·관리·청소에 이어 산업폐기물 수집·운반까지 하는 회사로 발전했다. 심 회장이 지금까지 대표를 맡고 있는 이 회사의 운영은 손자에게 맡겨놓고 있다.


심 회장은 부모님과 동생들이 귀국한 후 10여 년 만에 한국에 와서 부모형제를 만난 적이 있다. 고베에서 나무로 된 연락선을 타고 부산에 도착해 마산으로 왔는데, 음력 설을 앞둔 시기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하 '민단')에 가입해 60여 년간 활동하고 있다. 28살 때 교토지부 국제과장을 맡았고, 감찰위원장과 지단장도 지냈다. 민단 본부에서도 의장과 감찰위원장 등으로 20여 년간 활동했다.

심 회장이 17년 전 교토도민회장을 처음 맡았을 때는 경남을 본적으로 한 회원이 2만명 정도 됐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절반 정도로 줄고, 회원활동에 참여하는 인원은 200명 정도다. 그래도 월 1회 정도 간부회의를 하고, 송년회와 신년회, 향토식수행사와 여행 등으로 1년에 두세 번 정도 전체 회원 대상 행사를 갖는다. 심 회장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세상을 떠나고, 나이가 들어 참여하는 회원이 줄어들고 있다"며 "3~4세들은 뿌리에 대한 생각이나 애국심이 별로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건강 비결을 묻자 "특별한 게 없다"며 "젊어서 고생해도 경제적으로 걱정 없고, 집안이 화목한 것"을 꼽았다. "속이 썩으면 없던 병도 생긴다"며 자식들이 착하게 살아 준 것도 고마워했다. 작년까지 1주일에 한두 번 정도 골프를 쳤는데 올해 들어서는 자주 가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나이가 들어 갈 데가 별로 없어 심심하다"며 "고향사람과 고향을 찾는 게 큰 즐거움"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