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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낙동강 둔치와 남지개비리길

고룡이 2021. 11. 13. 22:49

【창녕 낙동강 둔치와 남지개비리길】

 

억새는 산에만 있지 않다

물억새 은빛물결에 빠져보자

 

가을이 깊어가면서 산은 은빛 억새물결로 출렁인다. 평소 산을 찾지 않던 사람들도 억새의 유혹에 한번쯤 빠지고 싶은 계절이다. 하지만 억새는 산에만 있지 않다. 요즘 창녕군 남지읍 박진교 주변 낙동강을 따라 형성된 둔치에 펼쳐진 억새평원의 은빛물결이 검푸른 강물과 경계를 이루며 장관을 연출한다. 이곳의 억새는 산과 들에서 보는 보통 억새와 좀 다르다. 강가나 연못가 습지에서 자라는 물억새다. 참억새와 비슷하나 꽃 이삭이 좀 짧고, 잔 이삭은 까끄라기가 없는 게 특징이다.

창녕 남지읍 박진교 주변 장관 연출

이곳에 억새평원이 펼쳐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예전에 대곡들이라고 불리던 이곳은 인근 주민들의 단무지용 무와 가을채소 재배지였다. 봄에는 땅콩을, 시대가 흐르면서 하우스 수박을 많이 재배했다. 하지만 하천부지였고, 15년여 전부터 하천부지 편입을 위한 보상이 이루어져 왔다.

4대강 사업으로 하우스 등이 완전 철거되고 하천둔치로 조성됐다. 자연스럽게 억새평원이 펼쳐지면서 요즘 은빛물결을 이룬다. 중간에 자전거도로를 내어 생태공원의 모습도 갖추고 있다.

 

625 상흔 간직한 곳 물억새 군락 이뤄

옛날 박진나루터가 있었던 박진교 주변은 6.25전쟁의 아픈 상흔을 간직하고 있다. 낙동강 돌출부라 불리는 이곳은 낙동강전선의 주요격전지였다. 강 건너 의령군 부림면과 낙서면을 점령한 북한군이 부산 진격을 위해 화력을 집중한 곳이다.

북한군은 한때 강을 건너 창녕군 영산면까지 점령했다가 국군과 미군의 반격으로 다시 강 건너로 밀려났다. 이 과정에서 양쪽은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 특히 이 전선의 주력을 맡았던 미군의 희생이 컸다고 한다. 박진교 위 월상마을에 건립된 '박진지구전쟁기념관'과 마을 옆 산 능선에 세워진 '박진지구전적비'가 이를 전하고 있다.

강 둔치는 박진교 위쪽에서부터 500여m의 폭을 유지하며 반포마을을 거쳐 칠현마을 앞까지 6㎞ 정도 이어진다. 옛 월하대곡반포칠현들이 이어지는 곳이다. 그 넓이가 300만㎡에 이르는 셈이다. 이 넓은 평원에 나무와 풀들이 자리한 가운데 중간 중간 물억새가 군락을 이루었다. 그리고 꽃을 피운 요즘 은빛물결을 펼치고 있다.

 

강과 자연 즐기며 걷는 아름다운 벼랑길

<남지개비리길>

남지 박진교 아래 둔치 남쪽 끝 칠현마을에서 낙동강자전거길을 따라 창아지마을을 거쳐 영아지마을에 이르면 자전거길은 마을 뒷산으로 꺾어진다. 강이 벼랑과 접하고 있어 예부터 넓은 길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강가 벼랑을 따라 개비리길이라고 부르는 좁은 길이 나 있다. 이 길은 지명과 관련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옛날 영아지마을의 어느 집에서 키우던 개가 남쪽 용산마을로 팔려가자 헤어진 자신의 여자 친구를 만나러 자주 다녀서 길이 났다고 한다. 그 길을 마을 사람들이 발견해 살짝 넓혀서 쓴 것이 개비리길의 시초라는 것이다. 하지만 '개'는 강이나 하천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이라는 순 우리말이고, '비리'는 벼랑을 뜻하는 경상도 방언이니 개비리는 강가의 벼랑길을 뜻한다는 말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연유야 어찌됐든 이 길은 남지개비리길로 불리며 요즘은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왕복 4㎞ 정도인 이 길의 걷기는 보통 용산마을 앞 남지수변공원에서 시작한다. 영아지마을까지 이어지는 개비리길은 시원하게 펼쳐진 강과 원시자연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글/사진 최춘환 편집장

경남공감 2014년 11월호[Vol.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