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고 싶다】 사천 신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사천 신수도
'한국 명품 10대 섬' 이름 올린 그곳
2월 초순이면 봄소식 전한다
삼천포항에서 2km 정도 떨어져 있어 뱃길로 10여분이면 닿는 신수도. 지난 2010년 행정자치부가 선정한 한국의 명품섬 Best 10에 이름을 올릴 만큼 아름다운 섬이다. 그리 크지 않은 섬이지만 사천시가 거느린 7개의 유인도와 33개의 무인도 등 40개의 섬(연륙도서 제외) 가운데 가장 크다. 그리고 육지에서 가까워서인지 아직까지 주민들도 비교적 많이 산다. 한려수도 한가운데 자리 잡은 신수도는 2월 초순이면 벌써 이른 봄소식을 전한다.
바닷가 둘레길 따라 구석구석 볼거리
사천시 서동 삼천포항에서 신수도를 오가는 차도선이 항구를 벗어나자 뱃전을 스치는 바람이 한결 상쾌하다. 육지와 섬, 섬과 섬, 바다와 바다가 끊어진 듯 이어지는 삼천포 앞바다에서부터 봄기운이 느껴진다.
배가 신수도항 남북 두 방파제 사이를 통과하자 전체 모습을 드러낸 신수마을은 섬마을 치고 제법 크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신수마을 도선장에서부터 시작되는 일주도로를 따라가기로 했다. 섬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려면 이 길을 따라 이어지는 둘레길이 좋다는 정보를 접했기 때문이다.
이 둘레길은 지난 2011년 사천시가 7억여 원의 사업비를 들여 도보와 자전거, 차량으로 섬을 둘러볼 수 있게 만든 길이다. 전체 길이가 9.3km로 굴곡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인 신수도의 전체 해안선 길이와 맞먹을 정도이니 섬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다.
파도와 몽돌이 아름다운 화음 만들어
신수마을 오른쪽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50여개의 돌탑이 길손을 맞는다. 해질녘이면 이 길에서 서쪽 바다건너 남해 창선도 너머로 바라보는 석양이 아름답다. 돌탑에 소원을 빌고 30여분 걷다보면 신수도의 두 번째 마을인 대구마을. 마을 입구에는 지난해 조성된 캠핑장과 생태체육공원이 말끔하게 단장돼 있다.
생태공원을 지나 방파제로 가는 길을 걷다보면 왼쪽으로 수평선(水平線)과 운평선(雲平線)이 맞닿은 쪽빛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파도가 하얗게 물거품을 일으키는 해안은 신수도몽돌해수욕장이다. 매끈한 몽돌이 빼곡히 박혀있는 해수욕장은 여름철 해수욕객들이 즐겨 찾는다.
하얀 파도에 구르는 몽돌이 내는 소리는 저 멀리 통영 사량도와 그 부속섬 수우도의 봄소식을 전하는 듯하다. 파도와 몽돌의 화음을 들으며 해변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바쁜 일상의 찌든 때가 절로 씻기는 기분이다.
바닷길 열리는 추섬유원지서 갯벌체험
북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길은 한적한 오솔길을 거쳐 밭과 마을, 다시 밭이 나타나는 전형적인 둘레길이다. 천천히 1시간 정도 걷다보면 동쪽으로 돌출된 땅 끝에 하루 두 번 바닷길로 연결되는 섬이 보인다. 신수도에 딸린 부속섬 중 가장 큰 추도다.
썰물 때 길이 열리는 이곳은 바지락과 주꾸미, 미역 등 해산물이 풍부해 아이들과 함께 갯벌체험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좌우 바다건너에 삼천포항과 삼천포화력발전소가 보이는 해안은 전망이 좋고, 모래사장도 있어 오붓하게 시간보내기에 좋은 곳이다.
이곳에 추섬유원지가 조성돼 숙박과 식사를 하는데도 불편함이 없다. 옛날에는 마땅히 머물 곳이 없어 섬을 찾은 외지인들이 신수마을에서 민박을 하면서 이 해안에서 해수욕과 모래찜질을 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자갈과 몽돌도 많고, 물이 깨끗해 요즘도 여름철에는 해수욕객과 캠핑족들이 많이 찾는다.
북쪽 전망대서 보는 삼천포야경 일품
신수도 북쪽은 옛날 섬사람들이 후릿그물로 물고기를 잡았던 어장이 있던 곳이다. 그래서 이름 붙은 후릿개에는 전망대가 설치돼 주변을 조망할 수 있다. 이곳에서 보는 삼천포항과 삼천포대교의 야경은 일품이다. 저 멀리 북쪽에서 사천의 명산 와룡산이 굽어보고 있다.
전망대 아래 후릿개 낚시터 앞 바다는 3월부터 5월까지는 감성돔과 볼락넙치, 7월부터 10월까지는 감성돔과 학꽁치, 10월부터 12월까지는 볼락과 노래미가 많이 잡혀 낚시꾼들에게 인기다. 후릿개를 지나 길을 따라 돌면 널따란 바위가 비켜 쌓인 넓은 갯바위가 나타난다. 이곳 갯바위에서도 낚시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어 채방골이 나타나고 멀리 각산 자락과 늑도를 이어주는 삼천포대교가 우람한 자태를 자랑한다. 마지막 곶을 돌아 신수도항 북방파제 낚시터를 거쳐 신수펜션과 신수횟집 앞에 닿으면 섬 일주는 끝을 맺는다.
바지락·문어·고구마·고사리가 특산물
신수도는 남북으로 3개의 낮은 구릉이 길게 늘어선 형태다. 섬 이름은 섬을 중심으로 산봉우리와 도서 등의 수가 52개라 하여 쉰두섬 또는 신두섬이라 불린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또 섬 전체의 형상이 귀신의 머리형상과 같아 신두(神頭)섬, 주변의 수심이 깊어 심수도(深水島)로 불리다가 신수도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연유야 어찌됐든 조선시대 문헌에 신수도(新樹島)심수도(深水島) 등으로 기록돼 있다.
신수도에는 400여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신수마을과 대구마을 등 2개 자연마을에 168가구 34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사천시는 주민들의 민원을 처리하고, 불편을 들어주기 위해 소장과 직원 2명이 상주하는 신수출장소를 운영한다.
바지락과 돌미역, 문어, 물메기 등 해산물과 고구마, 고사리 등 밭작물은 지금도 섬의 특산물이다. 요즘은 낚시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낚싯배, 횟집, 펜션 등도 섬사람들의 주요 수입원이다. 섬을 돌다보면 물메기통발과 문어단지를 손질하는 촌로들을 많이 보게 된다. 70년 역사를 가진 신수초등학교는 지난 2010년 3월 삼천포초등학교 신수분교로 격하됐으나 아직도 11명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왜장의 묘로 알려진 무덤 조선군 책임자의 묘 확인
<신수도 취재하다 발견한 사실>
신수도는 왜장의 무덤이 있다는 말이 전해올 만큼 왜구들의 노략질이 심했던 곳이다. 그런데 이번 섬 취재를 통해 의외의 사실을 확인했다. 왜장의 것으로 알려진 무덤이 사실은 왜구를 막기 위해 주둔했던 조선군 책임자의 묘라는 사실이다.
주민 김영식(50)씨의 도움을 받아 왜장의 무덤이 있다는 곳을 찾았다. 김씨는 묘 2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무덤의 형체를 알 수 없고, 묘비만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묘비에 새겨진 글귀를 보니 왜장의 것이 아니라 섬에 주둔했던 조선시대 오위도총부 용양부대의 책임자 박응철과 그의 부인을 안장한 내용이었다.
대구마을에 용양부대가 주둔했다는 역사기록이 있고, 이 비석의 글귀로 보아 무덤은 조선군 책임자의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묘비에는 박응철의 벼슬을 조선시대 종2품에 해당하는 가선대부로 표기하고 있다. 200여 년 전 이곳 신수도에서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주둔한 조성군 책임자의 묘지라면 잘 관리하고, 보존할 가치가 있다. 그래서 묘비의 내용을 그대로 전한다.
<앞면>
嘉善大夫行龍讓 衛副護軍朴公之墓
가선대부 행 용양위 부호군 박공의 묘
<뒷면>
公之諱應哲密陽人也生干戊午年
二月三十日卒于庚午年十一月初二日葬
于旺山乾亥龍亥坐之原
配文昌人黃性明之女
千儉德九外孫天孫弼賢
辛未八月十九日立 朔夫
공의 휘는 응철이며, 본관은 밀양이다. 무오년(1738?) 2월 30일에 태어나 경오년(1810?) 11월 초이틀에 돌아가셨다. 왕산 건해 용해 자리의 언덕에 묻었다. 배우자는 본관 문창(창 원)인 황성명의 딸이다. 사위 천금 덕구. 외손 천손. 필현. 신미년(1811?) 8월 19일에 세웠다.
〔경남공감〕 2015년 02월호[Vol.23]